미국 테러 참사라는 사상 초유의 대사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전날 1천억원어치 이상을 내다 팔았던 외국인은 13일에는 5백억원 이상의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특히 전날 외국인 순매도 1위에 올랐던 삼성전자가 이날은 순매수 1위 종목으로 바뀌었다. 외국인은 SK텔레콤에 대해서도 전날과 달리 매수 우위를 보였다. 증권가에서는 주로 단기 매매에 치중하는 홍콩계 자금이 전날 증시 폭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아 국내 증시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홍콩계 자금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시가총액의 3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이 매도나 매수보다 관망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엇갈린 외국인 행보=전날 외국인은 거래소 시장에서 지난 7월24일 이후 최대치인 1천1백5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8백89억원)와 현대증권(52억원),국민은행(43억원) 등을 주로 팔아치웠다. 그러나 이날은 반대로 삼성전자에 대해 2백83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인 것을 비롯 국민은행 SK텔레콤 한국통신 현대증권 등을 사들였다. 이처럼 상반된 매매태도를 보인 것은 전날 매도 주체와 이날 매수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전날 매도세력이 미국 테러 참사의 충격을 받은 미국·유럽계인데 비해 이날은 단기 차익을 노린 홍콩계가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계 자금이 통상 단기매매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전날 외국인 매도로 낙폭이 컸던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저가 매수 대상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동요 조짐 없다=전날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미국 테러 참사의 '충격'에 비하면 그리 큰 규모가 아니라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CSFB증권 서울지점 박상용 이사는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국 테러 참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투자심리에 큰 동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대로 미국 뮤추얼펀드 등의 대규모 환매사태가 예상된다면 급반등세를 보인 이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어야 한다"면서 "외국인이 테러 참사 이후의 상황 등을 주시하면서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날 홍콩계 투자자들과 접촉한 결과 '한국 주식이 너무 싸 베팅하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미국 테러 참사 이후의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어 자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미국 테러 참사의 여파로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짙어져 보험사를 중심으로 보수적인 자산운용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럴 경우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의 주식편입 비중을 줄이고 채권과 선진국 주식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펀드매니저들이 환매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대규모 환매사태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망 및 투자요령=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본격적인 행보는 미국 증시가 정상화된 다음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이번 테러에 대한 보복·응징의 수준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증권 정 이사는 "미국이 보복 대상을 어디까지로 삼느냐에 따라 세계경제와 증시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상황에 따라 국제 원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해외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당분간 내수 관련 경기방어주 위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