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 '쪽빛' 바다서 낚아올린 '銀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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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천하를 처음 통일한 이는 진시황(秦始皇)이다.
중국이 전국 7웅으로 나뉘어 각축을 벌이던 BC221년, 그가 38세 되던 해다.
큰 상인 여불위가 진의 서출공자 자초에게 바친 애첩의 몸에서, 여불위의 후생으로 태어난 그는 천하통일이란 대업을 이룬 뒤 불로장생까지 꿈꾸었다.
황제의 영화가 만세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시(始)황제라 칭한 그가 아닌가.
서시(서복)를 우두머리로 한 3천여 무리가 동방을 샅샅이 뒤졌다.
제주도라고 서시의 자취가 없을리 없다.
불로장생의 영약은 찾을수 없었고 진시황의 터무니없는 바람에 대한 비난이 갱유(坑儒)사건의 한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제주사람들은 달리 믿고 있다.
서시가 지금도 한라산 1천7백m 이상의 고지에서만 난다는 '시로미'란 영생의 열매를 구했다는 것.
서시가 득의만면해 서쪽땅으로 향한 포구, 제주도의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은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사계절 언제나 새로운 섬.
검은 화산석과 초원위에 우뚝한 신령스런 한라산, 원시림과 어울린 아열대의 식생, 탁 트인 쪽빛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부속섬.
제주도는 한국속의 이국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풍광의 본향임에 틀림없다.
하루 이틀로 제주도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터.
몇 차례 더 찾는다는 생각으로 한곳 한곳 샅샅이 뒤져 보자.
제주도 남부 서귀포쪽을 우선하는 것은 어떨까.
환한 색상의 정경으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서귀포항에서의 유람선 여행.
바다로 나가 안을 전망하는 맛이 남다르다.
초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출항하는 고깃배들 사이로 서귀포항을 나선다.
동남아 인기 섬여행지에 못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투명한 물색이 반갑다.
앞쪽으로 섶섬이 눈에 띈다.
모두 무인도인 서귀포 앞바다의 5개 섬 중 하나.
새섬과 문섬을 왼편으로 하고 삼매봉 앞바다의 외돌개로 향한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발기한 남근처럼 바닷물 위에 우뚝하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원나라의 잔류세력을 토벌할 때 활용했다고 해서 장군석이라고도 부른다.
뱃일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를 기다리다 굳어버린 지어미의 망부석이란 말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린 것 같은 형상의 범섬은 해식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식수가 나는 유일한 섬이다.
몽고의 잔류세력을 모두 토벌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범섬을 앞에 두고 보는 구름낀 한라산의 실루엣이 멋지다.
완공을 앞둔 월드컵경기장도 한눈에 들어 온다.
유람선은 범섬을 기점으로 기수를 되돌리지만 좀더 나가면 중문의 주상절리대를 만난다.
잘 다듬어진 육모기둥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파도가 심할 때는 포말이 20m이상 용솟음치는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스테인리스로 된 전망안내로가 눈에 좀 거슬린다.
뱃길 곳곳에 자리한 갯바위낚시꾼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멀리 산방산과 송악산 너머로 하루 해가 진다.
또렷한 윤곽의 불덩어리가 송악산의 바다쪽 경사면에 걸린다.
스크루에 감겨 하얗게 부서져 밀려나는 포말이 형광재료처럼 푸른 기운을 발한다.
머리위까지 걸친 거대한 구름 가장자리는 금테를 두른 듯 황금색으로 빛난다.
해가 너머간 뒤의 일주도로 위.
칠흑처럼 어두워진 바다를 빙 둘러 피어난 백색의 어화(漁火)가 더욱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서귀포=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