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으로 유럽이 온통 화염에 휩싸였을 때다. 영국 수상 처칠은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찾아갔다. 도버해협을 넘어와 폭탄을 퍼붓고 가는 독일군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영국으로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처칠은 짐을 풀기도 전에 루스벨트를 붙잡고 하소연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미국으로서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던 탓이다. 처칠은 지친 몸을 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풍전등화 같은 영국의 운명이 눈앞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에이,목욕이나 해야지" 목욕을 하고 있는데 조용히 방문이 열리면서 루스벨트가 나타났다. 동맹국 수상에게 마땅한 선물을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불쑥 호텔을 찾은 것이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알몸으로 걸어 나오는 처칠. 아마도 둘 다 아뿔싸,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게 어디 보통 해괴망측한 광경이었겠는가. 하지만 처칠은 태연했다.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영국의 수상은 더 이상 숨길 게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라이벌인 리눅스 개발자 리누스 도팔즈는 "컴퓨터를 처음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순간 단순히 "돈을 좀 벌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오늘날의 리눅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처칠의 알몸과 도팔즈의 말은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있어 감성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이것은 거시적 이론이나 학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마음이 움직였고,영국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 리눅스는 OS(운영체제)시장에서 MS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적수임에 분명하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놀라운 업적을 이루는 데 인간적인 솔직함과 감성만큼 극적인 것은 없다. 결국 비즈니스와 마케팅이란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 인간적 매력과 감성적 요소만큼,또한 그러한 심리를 자극하는 것만큼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국경선이 무의미한 시장을 놓고 벌이는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단지 부지런하고 열심히 했다는 차원을 넘어 "욕구를 일깨우는" 매력을 창출해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다. 비즈니스와 마케팅도 일회성으로 물건을 잘 파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 패러다임을 형성시키는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알몸에서도 감동적 요소를 발견해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마케팅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감성 마케팅 전략"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마케팅 잘하는 사람,잘하는 회사"(이장우 지음,더난출판,9천5백원)는 마케팅의 대상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반응하는지,이메이션코리아 대표인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설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적인 부드러움(혹은 본능적인 감동)이며 감성 마케팅의 기본이 된다는 것. "부드러운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복잡하고 원론적인 마케팅 이론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손병두 < 전경련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