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도시계획 이상과 현실 .. 김진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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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 건축가 / (주)서울포럼 대표 >
"왜 도시가 이 모양입니까?"
정치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시는 난마(亂麻)와 같다.
왜 이렇게 혼돈스러운가,왜 이렇게 복잡한가,왜 이렇게 갑갑한가,왜 이렇게 이악스러운가,왜 이렇게 갈등이 많은가.
그런데 비전은 있는가,좋아질 희망은 있는가? 과연 우리 도시에서 도시계획이라는 정책수단이 가능한가,도시계획 전문가로서도 회의가 들 정도다.
서울 강남지역을 보자.강남은 30년 정도 나이를 먹은 개발지이고,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하고,잘 사는 편이고,개발이기주의와 환경이기주의가 갈등하고,10여년 전부터 재건축 열풍도 대단한 지역이다.
사실 강남은 우리나라 도시개발의 모델이라 할 만하다.
대다수 도시지역이 강남과 같은 운명에 도달할 것이다.
많은 신도시들이 10∼15년 정도 안에,수많은 신개발지들이 조만간 이런 상황에 부딪칠 것이다.
새로 지어진 단지에 입주했던 달콤함도 잠깐일 뿐이다.
그런데 강남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진퇴양난이다.
강남의 잠실 반포 등 저밀도 아파트단지 약 1백여만평의 재건축 방침이 결정된 것은 5년 전이다.
그 이후 공공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조합이 시공자 선정하는데 5년,아직도 어느 단지가 먼저 삽을 뜰 지 신경전을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재건축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고층아파트가 있는 고밀도 아파트단지들도 서울시의 '용적률 상한 2백50% 규제'에 강력히 반발하며 '사업인가를 빨리 내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담당 구청으로서야 어떻게 새로운 재건축 사업인가를 내줄 것인가?
각 단지,각 조합이야 빨리 재건축을 추진해 높은 용적률을 보장받고 싶겠지만 '다들, 그러나 각기' 그렇게 추진한다면 환경은 어찌 되고,그 와중에 주택시장의 교란과 전세·주택가격 파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건교부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계획의 수단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단지의 재건축,엄청난 규모의 개발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기본계획 수립,지구를 설정하고 계획을 설정하는 지구계획 등 계획수단의 효과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10∼20여년 전 '단지개발 사업계획 지구개발'같은 것은 아주 쉬운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시장은 크고,변수는 많고,행위자들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는 공공의 대규모 계획이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도시계획이란 최소한의 법규만 있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도시계획법과 건축법만 있으면 최선이다.
재개발법이나 주택개발촉진법 같은 특별법,또는 특정한 사업에 대한 공공의 기본계획 수립,'상세계획지구,도시설계지구' 같은 것은 오히려 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만 키우고 개발사업 기간을 장기화하면서 시장만 교란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좀 더 '시장주의적'으로 개발이 일어난 강남의 다른 지역을 보자.적어도 시장교란이나 집단민원,개발 정체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서울시의 체비지를 풀어서 상업지역을 만든 도곡지구는,단지라기보다 몇개의 필지로 초고층 주상복합이 하나씩 들어섰다.
대지 분양부터 건축까지 불과 7년만에 지어져서 기능을 하고 있다.
강남의 주거전용지역을 풀어서 용적률을 높여 준 것이 3년 전이다.
나는 이 규제완화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도시계획 수단으로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30%정도가 3∼4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으로,한 건물씩 소리소문없이 지어지면서 주택난 해소에 상당한 기여를 한 개발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시계획은 '가능한 도시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
도시계획은 결코 '전능'하지 않다.
일시에 일률적으로 문제를 해소하기란 가능하지 않다.
대규모로 공공이 개입할 수록 문제는 더 커질 뿐이다.
공공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개발의 상한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적이어야 한다.
선거나 경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일률적인 대단위 단지개발보다 건물단위의 재건축이 일어날 수 있는 수단을 고민하라.최소한의 공공개입으로 민간개발이 시장에서 추진될 수 있는 틀만 만들라.현재의 시장사회에서 가능한 도시계획을 만들라.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