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경 <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 prangel@sac.or.kr > 아침이나 오후 나절에 예술의전당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종종 산사(山寺) 앞마당이 아닌가 착각하곤 한다. 어느 날엔 반야심경,또 다른 날엔 금강경을 독송하고 설법하는 소리가 산들거리는 바람에 실려오기 때문이다. 소리의 진원지는 예술의전당 뒷산 우면산에 있는 백제불교초전법륜성지(百濟佛敎初傳法輪聖地) 대성사다. 대성사는 1950년대에 중건된 것으로 창건은 4세기 백제 침류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역에서 온 인도승 마라난타 대사가 창건한 이후 이 절에는 원효 의상 지눌 보우 무학 등 우리 역사에 빛나는 큰스님들의 족적이 깊게 패어 있다. 그런데 예술의전당이 명소화하면서 절에는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중심지를 앞마당처럼 내려다보게 되었으니 기분 나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드는 게 전통사찰로서는 흔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새로 만들어진 야외극장 공연을 둘러싼 신경전이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다. 예술의전당은 지난 99년 대성사와 예술의전당 사이의 언덕배기에 야외극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잔디언덕에서 야외공연을 해 왔다. 야외극장에 오르는 작품은 대중적인 레퍼토리가 많다. 대중가수들이나 재즈 뮤지션에게 예술의전당 야외극장은 이상적인 무대 가운데 하나다. 서울인데도 맑은 공기와 자연의 느낌을 가지면서 예술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야경은 일품이다. 야외극장에서는 록콘서트도 열린다. 예술의전당으로서는 분위기에 맞는 공연을 유치하려고 애쓰지만 여의치 않다. 발라드풍 가수들도 콘서트에서는 열광적인 분위기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극장과 사찰은 공연문제로 여러 번 의견을 조율했지만 공연을 하지 않거나 소리 자체를 죽이지 않는 이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는 감동적인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이 된다.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번잡한 저잣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낭랑하게 들려오는 독경소리를 들으며 또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