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아버지와 지낸 기간은 10년도 안된다. 어릴때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와 둘이 뉴욕의 허름한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린스펀의 '어머니 생각'은 각별했다. 1987년에 FRB 의장이 돼 워싱턴으로 간 뒤에도 주말이면 뉴욕에 있는 어머니를 찾곤 했다. 오죽했으면 1990년대초 정적으로부터 '주말만 되면 엄마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마마보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모친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지만 정작 그의 생활습관과 인생노정은 함께 오래 살지도 않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호하고 은유적인 말투'는 부친을 빼닮았다. 다음 글을 보자. "May this my initial effort with a constant thought of you branch out into an endless chain of similar efforts so that at your maturity you may look back and endeavor to interpret the reasoning behind these logical forecasts and begin a like work of your own.Your dad" 복문과 중문이 혼합된 굉장한 장문이다. 표현도 무척이나 은유적이다. 직설적인 부분은 마지막의 'Your dad'뿐인 것 같다. 월가의 주식중개인이던 그린스펀 부친이 1935년에 지은 증시관련 책을 당시 여덟살짜리 아들에게 주면서 속표지에 쓴 글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도 어른이 됐을 때 책을 써라'는 것이다. 이 글을 말로 하면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린스펀은 바로 이런 어투로 연설하곤 했다. 경제가 좋았던 작년까지 줄곧 그랬다. 의회청문회나 일반 연설때 모호한 발언으로 일관했다. 그의 말이 전해지면 월가 금융전문가들은 진의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올 들어 경제가 수렁에 빠진 뒤 어법이 '직설적'으로 바뀌었다. "경제가 좋다,나쁘다" "금리를 내리겠다,안내리겠다"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린스펀의 모호한 말투가 그립다. 그의 옛 말투가 되살아날때 미국 경제도 살아나 있지 않을까.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