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는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등급을 매겨 평가하고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평가와 관련해서는 증권거래소 산하에 '기업지배구조평가원'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기업 경영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내용을 공개해 시장의 감시를 받도록 한다는 방안도 포함됐다. 평가원은 거래소의 지배구조개선위원회를 별도의 사단법인으로 분리한다는 구체적인 설립방안까지 제시됐다. 그러나 기업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도입되는 이들 제도가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지, 또 관치금융에 이어 '관치증권을 제도화' 하지나 않을지 적지 않은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이 제도가 미국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엔 기관투자가들이 의결권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방편으로 순수민간 회사로 운영되고 있을 뿐 우리와는 설립 배경부터가 다르다는 점에서 앞으로 또하나의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 지배구조평가원 =재경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투신사 및 자산운용사의 의결권행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이번 기관투자가 역할제고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지배구조평가원을 설립해 의결권 행사 내용을 자문하고 기업주총 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기능을 맡긴다는 것이다. 재경부 임종용 증권제도과장은 "미국은 ISS(기관투자가 서비스), 영국은 PIRC(연금 컨설팅) 등 전문기관들이 기관투자가에게 의결권행사와 관련된 기업정보를 제공하고 자문도 해주고 있다"며 "기업지배구조평가원은 지배구조 신용등급을 발표하고 기관투자가에게 의결권행사 방향에 대해 자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ISS는 지난 85년에야 순수민간 상업회사로 설립되는등 우리와는 설립 배경과 성격부터가 다르다. ISS등 민간 평가회사들이 '주총 영업'을 개시한 것부터가 기관투자가들이 일일이 주총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합리적인 총회꾼 기능을 돈을 받고 대신해 주는 것'이 이들 주총회사의 영업내용이다. 이런 터에 정부 산하의 증권거래소가 평가기관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문제가 될 소지가 없지 않다. 자칫 기업 주총에 정부가 관여하는 관치증권을 제도화하는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정부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결권행사를 아예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이는 기업경영의 자율성은 물론 기관투자가의 효율적인 투자를 방해할 가능성만 높일 것으로 우려된다. 비전문가들인 기관투자가에게 의결권 행사를 강제할 아무런 실익도 없거니와 이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각종 거래비용만 높여 놓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기관투자가들이 모든 주총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합병.영업양수도 등 신탁재산의 손실을 초래할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고 있다. 재경부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행사를 허용한 이후 실제 행사율이 지난해 4.5%에 그쳤고 원안에 반대한 경우는 한건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비전문가인 투자자 입장에서 당연한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지적들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