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내놓은 잘못된 자료를 언론사가 추가 확인절차없이 그대로 보도해 특정인이 피해를 봤다면 국가와 언론사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이런 경우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검은 지난 91년 1월 경쟁업체에 스카우트되기 위해 회사 기밀서류를 넘겨준 혐의로 K사 직원 이모씨를 구속하면서 피의사실을 요약한 수사자료를 기자들에게배포했다. B신문은 `회사기밀유출 간부 구속' 등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고 이어 A신문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씨는 재판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고 국가와 두 신문사를 상대로 피의사실 공표와 명예훼손으로 정신적 손해를 봤다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 소송에서 "B신문 기자는 보도 당시 담당검사에게 추가 확인노력을 기울였지만 A신문 기자는 구속영장 사본만 열람하고 기사를 작성했다"며 B신문에 대한 청구는 기각하고 국가와 A신문에 대해서만 "연대하여 3천여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이후 양측 사이의 책임비율이 명확치 않아 국가가 먼저 이 돈을 모두 이씨에게 지급한 뒤 B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의 70%인 2천100여만원을 달라"고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44단독 이환승 판사는 2일 "A신문은 전체 손해배상금의 30%인 900여만원을 국가에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혐의를 밝히는 데 필요한 수사를 다하지 않은 채 검찰의 수사발표가 이뤄졌고 언론보도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수사자료를 배포했으며 A신문 기자가 검찰에 추가 취재를 했더라도 기사내용이달라지기 어려웠던 점 등을 감안하면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며 "국가와 A신문의 책임 비율은 70대30"이라고 정리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용 기자 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