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이 또 다시 불안하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터키,동남아와 같은 신흥시장의 위기 징후 탓이다.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신흥시장의 위기를 알리는 소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런 소식에 무뎌질 만큼 무뎌졌다. 그런데도 한 가지 의문만은 외환 위기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아 있다. 신흥시장 국가들은 왜 금융 위기를 맞으며,그것도 주기적으로 반복될까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가설에 가까운 답들은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국제 금융 환경이나 구조의 결함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反)세계화주의나 국수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이런 주장은 흔히 음모론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위기가 철저하게 해당 국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해당 국가 경제의 질적 수준을 고려할 때,위기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양자의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도로만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통 사고가 어느 한 지점에서 계속해서 일어난다면,역시 운전자나 자동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반복적인 신흥시장 금융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해 신중하고 균형 잡힌 책이나 논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국제결제은행(BIS)총재를 지냈고 유럽통화기구(EMI)의장도 역임한 알렉산더 램펄시(Alexandre Lamfulussy)가 펴낸 "제 2의 금융 위기"(원제: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도서출판 성우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98년 미국 예일대 강의 원고를 엮은 이 책에서 그는 83년의 남미 외채 위기와 93년의 멕시코 위기,97년의 동아시아 위기와 98년의 러시아 위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입장은 현재의 국제 금융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흥 시장 국가들과 국제 금융계가 신중하게 접근하면 주기적인 위기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운전자도 신중해야 하지만,도로문제도 어느 정도는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번역자는 MBC 라디오의 경제 전문 프로그램인 "손에 잡히는 경제,김방희입니다"의 진행자인 김방희씨(37). 대중 경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이답게 그는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서 램펄시의 주장을 아주 쉽게 요약해 놓았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