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하순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반세계화운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제노바를 급습한 반세계 집단의 폭력시위와,여기에 맞서는 이탈리아 경찰의 진압장면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지면서 반세계화 세력은 다시 한번 그들의 정치적 구호를 전세계에 뿌렸다. 이들은 왜 반세계화를 부르짖는가? 1999년 말 시애틀의 WTO 각료회의 이후 주요 국제회의장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 반세계화 집단은 동질성이 별로 없는 군소단체들의 느슨한 연합체이다. 환경보호단체 노동단체에서부터 인권운동가 동성연애자 여권신장운동가 무정부주의자들까지 망라된 이들은 세계화가 부의 편중을 가져오고,환경을 파괴하고,개도국의 싼 물건 때문에 실업이 양산되고,초국가적인 법아래 개인의 자유가 위축되고 국가의 경제주권이 상실돼 간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을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는 다수의 침묵이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믿는 이들은 한세기 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진행되던 세계화의 진전과 좌초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유럽과 신대륙 사이를 무대로 진행됐던 상품과 자본, 그리고 인력의 이동은 실로 대단했다. 냉동선의 등장,철도망의 확대,해저통신망 가설,전신의 등장 등 당시 운송수단과 통신의 발달은 지금의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발달에 비견될 만한 정도로 이전의 기술에 비해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무역과 투자의 확대가 만들어 내는 이윤 창출기회에 흥분하고 있었고,세계화의 확대는 필연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가 기록하듯이 일련의 보호주의적 조치의 확산은 앞으로만 나갈 줄 믿었던 세계화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화에 대한 지적 공감대가 굳건하지 못하고,정치적인 지지가 희박해 지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세계화가 중단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개도국이며,개도국의 경제적 약자들이다. 세계화는 국내시장의 구매력이 빈약하고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장과 자본을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경제주권,유치산업 보호 논리에 매달려 반세계화적인 길을 걸었던 다른 개도국과 비교할 때,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사회계층간 부의 분포상태는 훨씬 양호하다. 자유무역과 자본이동 자유화의 확산이 환경과 노동기준 하락을 가져온다는 신빙성 있는 연구결과는 없다. 선진국 자신들의 환경과 노동기준의 하락이 각국으로 확산돼 범세계적인 삶의 질을 파괴하고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선진국 NGO들의 억지논리다. 선진국 기준에 적합한 환경보호,선진국에서나 가능한 노동기준 확립이 선진국 관점에서는 공정할 지 몰라도 개도국에는 사치품이다. 삶의 질 파괴를 빌미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은 선진국 시민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고 개도국 시민에게는 발전의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도덕적 기만행위이며 논리의 이중성이다. 심각한 환경오염 때문에 환경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누가 얼마나 부담을 질 것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개도국에 앞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과연 공정한 것일까?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초기에 그들의 노동상황은 어떠했는지 스스로 물어 볼 일이다. 세계화가 중단되는 경우,삶의 질이 더 하락하게 될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 시민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세계화 시위를 강 건너 불처럼 관망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 NGO들이 주도하는 반세계화운동의 허구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세계화가 중단되지 않도록 정치적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현명함이 더 잘 사는 길이다. byc@ewha.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