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중국'] (3) '기업 르네상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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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중국 경제일간지 시장보(市場報) 구석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만샹(萬向)이라는 중국 기업이 미국 시카고에 보험회사를 설립했다는 내용이었다.
보험 선진국 미국에 도장을 던진 만샹은 그 이후 중국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다.
만샹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저장(浙江)성 한 시골의 초라한 향진기업이었다.
자동차부품 업체였던 이 회사는 상하이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 지금은 유통 금융 부동산 관광 등에 2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선진 보험기업을 익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으로 역(逆)진출하겠다는게 이 회사의 미국 진출 야망이다.
만샹은 중국 토착기업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향진기업은 대부분 개혁개방 초기 농촌 잉여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급조된 농촌기업.
우리나라 '새마을 공장'에 비유되곤 했다.
그러던 향진기업이 지금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 수출의 25%를 담당할 만큼 급성장했다.
향진기업이 외국기업과 공동으로 설립한 합자법인이 약 2만5천개, 모두 3백7억달러의 해외자금을 끌어들였다.
'새마을 공장'이 20여년의 발전을 거치면서 '세계 공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중국은 '기업의 대 변혁기'를 지나고 있다.
만샹과 같은 향진기업은 지방정부의 개혁개방의 흐름을 타며 급성장, 업종다각화 및 세계시장을 향해 뛰고 있다.
그런가하면 봄 동산에 불붙듯 전국에서 사영기업 창업 열기가 번져가고 있다.
하루에 8백9개꼴로 사영기업이 생겨난다(국가공상관리국).
이들 사영기업이 기업 변혁의 중심에 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일 공산당 80주년 연설에서 "자산계층도 공산당 당원으로 가입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말한 자산가가 바로 민간기업 경영자들이다.
공산당이 그들을 감싸안은 것은 사기업의 존재를 부정하고는 경제정책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의 사영기업 수는 약 1백40만개.
그들이 고용하고 있는 인력이 2천5백만명에 달한다.
사영기업은 작년 한해에만 4백50만여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지난 3년간 국유기업 개혁으로 쏟아진 실업자는 약 2천4백만명.
그나마 사영기업이 있었기에 실업의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WTO와 사영기업은 찰떡 궁합이지요.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사기업은 직접 수출입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는게 한 예입니다. 현재 연간 매출액 1억위안이 넘는 사영기업은 수 천개에 불과하지만 5년 후 10만개 정도로 늘어날 겁니다"(진용이(金永益) 진거(金戈)투자공사 총재)
사기업 전성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조짐은 뚜렷하다.
최대 소프트웨어 개발 및 유통 업체인 용요우(用友)의 왕원징(王文京.37) 사장.
10년 전 5만위안을 빌려 용요우를 설립한 그는 지난 5월 50억위안의 거부로 등장했다.
상하이(上海)증시에 상장한 이 회사 주가가 액면가보다 1백 배나 뛴 것.
그는 모든 사영기업 사장의 우상으로 등장하며 '왕원징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중국 사기업은 자본주의 국가 기업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스톡옵션, 인센티브, 전방위 인사평가시스템 등 서구 경영시스템은 모두 들어와 있다.
대부분 젊은 사장이 이끌고 있는 사기업은 인수합병(M&A), 외국기업과의 합작 등 경영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다.
경쟁력 없는 국유기업 퇴출로 생긴 공백은 사영기업 향진기업 등 민간기업이 메우고 있다.
여기에 선진기술과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기업이 가세, WTO 가입을 앞둔 중국에서는 지금 '기업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만하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