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잔인한 여름(cruel summer)'이 예고됐다. 올 3·4분기(7∼9월) 수출 산업생산 등에서 최악의 수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7년 말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지속돼 온 무역흑자 행진이 마감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있다. 믿었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적자 가능성이 제기됐고 하이닉스반도체는 감산에 들어갔다. 한국 경제의 유일한 '기댈 언덕'이었던 반도체가 이젠 가격 뿐만 아니라 물량마저 감소가 불가피다는 얘기다. 일부 신흥시장의 금융불안은 아시아권으로의 전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다 비교 시점인 작년 3·4분기가 '2년 호황'의 절정기(경기 고점)여서 각종 전년 대비 통계는 더욱 나빠 보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통계 착시(錯視)로 인해 경제 주체들이 실제 이상으로 과도한 '심리적 불황'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우려되는 지표=작년 3·4분기엔 각종 지표가 '화려한' 성적을 자랑했다. 수출증가율(전년 동기비)이 26.5%,산업생산 증가율은 20.3%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은 9.2% 성장했다. 경기가 한껏 달아오르자 작년 10월 한국은행은 물가불안이 걱정된다며 콜금리를 인상(연 5.0%→5.25%)하기도 했다. 실물경기 부진이 심화되는 가운데 맞은 올 3·4분기에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질 전망이다. 생산 증가율이 올 1∼5월중 4.4%를 기록했지만 3·4분기엔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가뜩이나 실물경기가 좋지 않은데 작년 동기 수치가 높아 각종 통계가 훨씬 악화될 것같다"고 말했다. 한은이 최근 콜금리를 올들어 두번째로 낮췄지만 이달 15일 현재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과 감산 등으로 수출·생산 부진의 골이 깊어진 때문이다. 정보기술(IT) 석유화학 철강 등 주요 기간산업들도 수요부진과 감산,통상마찰 등으로 몸살이다. 이달 무역수지는 가까스로 적자를 면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성장률 3% 될까=한은은 올 경제성장률이 2·4분기 3.3%,3·4분기 3.0%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교 시점의 성적표(작년 3·4분기 9.2%)가 워낙 좋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3·4분기 이후'에도 쉽사리 경기가 되살아날 것같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경기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터에 아르헨티나 터키의 금융위기까지 돌출했기 때문이다. 추가 금리인하 감세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더 이상의 경기추락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