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새벽 내린 폭우로 유례없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서울지역 주민들은 밤새 침수된 가옥과 가게등에서 물을 퍼내는 등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하룻밤에 1년간 내릴 비의 절반이 내린데다 빗물펌프장의 가동이 늦어 서울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중 하나인 서울 이문동과 휘경동 일대 주민들은 이번 수해가 인재(人災)라는 허탈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내다말리고 보일러를 가동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반지하 주택이 유난히 많아 피해가 많았던 이 일대 집앞과 골목에는 못쓰게 된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과 장롱, 장판, 옷가지, 소파 등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차는 물론 사람들도 제대로 지나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 일대는 지하에 소규모 공장이 많아 흙탕물에 젖은 원단이 길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공장관계자들은 하늘만 쳐다볼 뿐 지쳐 더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못쓰게 된 가재도구 중 하나라도 더 쓸만한 것을 찾느라 골목에서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있었고 주부들은 흙으로 더럽혀진 그릇을 씻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번 수해는 비록 유례없는 집중호우가 원인이었다고는 하지만 펌프장을 제때 가동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미리 상황을 알리지 않은 공무원들의태만이 주원인"이라며 관할 구청과 정부의 늑장행정을 비난했다. 13평 반지하에 사는 최문석(38.회사원)씨는 "예견된 폭우라서 펌프를 준비하면서까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는데 믿었던 빗물펌프장을 작동하지 않아 거리에 나앉게 됐다"며 "1주일간 휴가를 내고 아이들은 친척집에 맡기고 이틀밤을 꼬박새 물을 퍼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쉬었다. 직원3명과 함께 지하공장에서 아동복을 만드는 박성순(40.여)씨는 "밖에서 흘러넘친 물로 지하가 완전히 잠겨 기계를 전혀 못쓰게 된데다 납품해야 할 아동복 1천여벌도 버려야 할 처지"라며 "이제 아이들 공부는 물론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관악구 신림시장 주민들도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동원된 불도저와 굴착기의 굉음과 악취속에서도 밤새 젖은 상품들을 길가에 내놓고 말리면서 침수된 가게를 정리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전날의 가스폭발 현장이 이번 폭우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구청 쓰레기차량이 동원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고 육군 2051부대 장병 250여명도 나와 상인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관악보건소 직원들도 수인성 질병에 대비, 장티푸스 예방접종을 실시했고 인근 학교 어머니회에서도 주민들에게 컵라면과 생수를 나눠주고 젖은 옷가지 빨래를 하는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또 광신고 학생들을 비롯한 인근 학교 학생들도 삽 등을 준비해와 쓸려내려온 흙을 치우는 등 상인들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기원하는 모습이었다. 한 옷가게 주인이 흙탕물에 젖은 옷을 주민들을 상대로 1천원에 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리어카 행상을 하는 임현옥(67)씨는 "밥벌이의 유일한 수단인 리어카까지 망가져 버렸다"며 "하루라도 빨리 고쳐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텐데.."라며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south@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이상헌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