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미국의 "기업실적 악화(Earnings Shock)"란 직격탄을 맞고 2개월 보름 전의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국내 여건이 나아지는 조짐이 없는 상황에서 지난 주말 미국의 주가급락이라는 충격을 받고 속절없이 폭락하고 말았다. 기술적으로도 주가 5일 이동평균선이 60일 이동평균선을 하향 돌파하면서 강력한 '하락 돌파갭'이 발생한 상황이어서 당분간 약세장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특히 이날 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투매 현상"이 나타나는 등 투자심리마저 급속히 얼어붙는 상황이어서 종합주가지수는 530선, 코스닥지수는 64선까지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희석되면서 실망감이 세계 증시를 뒤덮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장기 투자자의 경우 오히려 실적 호전이 뚜렷한 이른바 '가치주'를 저가 매수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다만 IT(정보기술)주의 경우 추가하락 가능성이 있는 만큼 매수 시기를 좀더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국내외 증시는 지난 4월 중순 이후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1,600선을 지지선으로,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490선을 지지선으로 힘찬 반등을 시작했다. 주된 요인은 하반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막상 하반기의 뚜껑이 열리자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지난 6월 실업률은 4.5%로 지난 5월(4.4%)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신규채용 인원이 11만4천명이나 감소, 3개월 연속 일자리가 줄었다. 여기에 금리 인하의 약효를 누릴 것으로 기대됐던 기술주의 상반기 실적은 오히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종의 대표적 기업중 하나인 AMD(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와 데이터 스토리지 장비업체의 대표 기업인 EMC 등의 실적악화 경고가 잇따르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러다 보니 다우지수는 3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나스닥지수도 2,000선을 다시 위협받게 됐다. 미국 경기가 바닥을 헤매다 보니 지난 6월 수출이 13.4% 감소하는 등 국내 경기도 바닥에서 탈출할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 악화되는 해외 및 국내여건 =세계 경제여건도 세계 증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다. 영국의 통신장비업체인 마르코니와 네덜란드 반도체업체인 ASML 등도 앞다퉈 실적 악화를 경고했다. 유럽 경제도 미국 경제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여기에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경제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투자 의지를 꺾어놓고 있다. 국내 여건도 우호적이지 못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본 엔화환율이 상승(엔화 약세)하면 원화환율도 함께 상승했었다. 최근엔 달라졌다. 일본 엔화는 달러당 1백25엔대까지 올랐지만 원화는 1천3백원 미만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밖에 대우자동차 매각 및 현대투신의 AIG 외자유치 등 구조조정의 제자리걸음도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추가하락 가능성 =대부분 전문가들은 추가하락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이 설정하는 지지선은 530선. 장득수 신영증권 부장은 "국내 주가가 오름세로 돌아서기 위해선 미국 주가가 안정돼야 하는데 본격적인 실적 시즌을 맞아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종합주가지수의 경우 530선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우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지난 4월에 비해 IT주의 하락폭이 훨씬 큰 데다 외국인의 매도세를 감안하면 당분간 반등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급락 가능성이 적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비록 국내외 경기회복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살아 있는 만큼 급락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 섣부른 투매는 금물 =이날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3.20%와 5.35% 급락했지만 이른바 '가치주'의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런 만큼 실적이 우량한 가치주에 대해선 급락장을 오히려 저가 매수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장인환 사장은 "은행 및 증권주와 실적우량주의 경우 550선 언저리에서 매수에 임하되 기술주의 경우 매수 타이밍을 좀더 늦추는게 좋다"고 권했다. 신영증권의 장 부장도 "지난 90년 이후 500대에서 주식을 사서 1년동안 보유했다고 가정할 경우 평균수익률이 24%에 달했다"며 "중·장기 투자자의 경우 섣부른 투매보다는 저가 매수의 기회를 엿보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