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왕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고속전철기술개발사업단. 18명의 석.박사들이 밤을 잊은 채 막바지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꿈은 오직 하나, 즉 고속전철 기술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시속 3백50㎞의 '한국형 고속전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이 '역사적 사명'이라고 자임하고 있는 이 야심찬 계획이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프랑스(TGV) 독일(ICE) 일본(신칸센)에 이어 고속열차 모델을 개발한 네번째 국가로 등록된다. 18명의 석.박사들이 하나로 뭉쳐 달려온 지 벌써 5년째.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은 듯 이제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12월이면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전철의 전두차량(앞에서 끄는 선두차량) 2량이 조립돼 세상에 태어난다. 또 내년 3월이면 당초 예정보다 9개월여 앞당겨 7량 1편성의 완벽한 한국형 고속전철이 철도차량공장에서 조립돼 나온다. 열차 하나, 철로 하나 제대로 설계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에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고속열차가 '18명의 석.박사'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철도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철도기술개발사업단이 태동한 것은 지난 96년12월. 이보다 앞서 92년 프랑스와 테제베(TGV) 도입 계약을 맺었을 때 우리나라에 전해 주기로 한 기술을 더욱 연구 개발해 독자기술화한다는 것이 출범 목적이었다. 초창기는 예상대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고속열차를 만들 기본적인 기술 토대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가진 인재들이 절실했다. 현재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김기환 단장을 비롯한 18명의 인력은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을 뒤진 끝에 엄선된 실력자들이다. 이들은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기술로 개발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프로젝트 이름은 'G7(위대한 7량 전철)'. 그리고는 프랑스 알스톰사가 TGV를 우리나라에 팔면서 한국고속철도공단에 준 기술 이전 내용을 어깨너머로 참고하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는 태부족이어서 연구원을 외국에 파견해 고속열차를 만져보고 그려보고 하는 등 수백번의 시행착오 끝에 한국형 고속전철시스템의 기본 사양을 결정했다. 99년 드디어 핵심기술인 엔진을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해 냈다. 바로 유동전동기. 기존 제품에 비해 성능은 동일하면서도 부피와 중량은 5분의 1로 대폭 축소한 제품이었다. 특히 속도를 시속 3백5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차체를 가볍게 하는게 긴요했다. 그래서 알루미늄 소재를 채택, 1량당 무게를 4∼5t 가량 가벼운 30t수준으로 낮췄다. 또 열차가 고속으로 터널을 통과할 때 생기는 내부압력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압시스템도 개발, 열차가 터널을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압력을 높여 승객들의 귀가 아프지 않도록 배려했다. 여기에다 독자기술인 와전류시스템을 추가해 전기자석 장치로 제동을 걸게 했다. 한결 부드러운 급제동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김 박사는 "우리의 목표는 고속열차를 순수 우리기술로 만들어 이를 중국 러시아 호주 미국시장 등에 파는 것"이라며 "시속 3백50㎞로 달리는 한국형 고속열차가 세계를 누빌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