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애들과 매번 싸움을 일으키는 바람에 '문제아'로 찍힌 성원이(18), 한때 중학교 태권도 대표선수로 촉망받다가 교내 폭력주범으로 몰려 소년원 생활을 한 호근이(19),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선생님이 보기 싫어 학교에 정이 떨어졌다는 혜진이(17.이하 가명). 나이도 다르고 학년도 같지 않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패자부활전'을 준비하고 있다. 성원이를 포함한 12명의 학생들이 매일 가방을 싸들고 등교하는 곳은 서울 전농동 청량정보고교내에 마련된 '대안학교 위탁교육과정'.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새로운 꿈을 다듬는 곳이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선생님의 젓가락과 숟가락부터 챙기는 손길이나 선생님의 질문에 꼬박꼬박 공손히 대답하는 모습이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다. 식사 도중 한명씩 번갈아 자리를 비웠고 다시 들어왔을 때는 몸에서 흡연의 흔적이 느껴졌다는 점을 빼곤. 이들은 어떻게 이 학교로 오게 됐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선생들이 짱(짜증)나게 하잖아요"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기존 학교의 모습이 이들에게는 버거운 짐이었다는 얘기다. 운동선수라는 특수성이 학교 적응을 방해한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레슬링을 잘해 '심권호'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학년 정호(17). 그러나 고교 입학후 운동을 그만두면서 학교적응에 실패했다. 태권도 선수였던 호근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공부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를 알아볼 것을 종용했다. 학교 졸업후 뭘 하고 싶으냐는 통상적인 질문을 던지자 성원이로부터 "군대에 가고 싶다"는 약간은 의외의 대답이 튀어 나왔다. 전에 있던 학교 교사중에 군대 얘기를 자랑삼아 하던 해병대 출신 선생님이 있었는데 자기도 지원해 진짜 자랑할만 한지 겪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혜진이는 메이크업 기술자가 꿈이라고 했고 세련된 용모의 준수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프로게이머를 장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도 다수였다. 위탁교육과정의 시간표를 들여다 봤다. 예상대로 일반고교와는 많이 다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 교과목은 1주일에 1시간씩만 배정돼 있다. 교재도 특이하다. 수학의 경우 교과서는 부교재 취급을 받는다. 대신 아이들 손엔 '웃기는 수학이지 뭐야'라는 다소 웃기는(?) 책이 쥐어져 있다. 강진식 교사는 "일반교과목의 경우 기초부터 시작해 애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가르친다"며 "수업은 모두 토론식으로 진행되고 교재는 시판중인 책중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돼 학생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나머지 시간엔 동아리활동이나 봉사활동, 특기적성교육 등을 실시한다. 한 달에 한번씩은 1박2일 코스로 강화도 현장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수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독특한 형태의 수업방식에 대해 학생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반반 정도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는 대답도 있었지만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매년 5천여명의 고교생이 자퇴나 퇴학처분으로 학교를 떠나는 서울의 교육 현실. 대안학교가 이들의 삶을 도닥이는 부활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윤리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유승준 교사는 "학교가 개설된지 두달여밖에 되지 않은데다 그나마 대부분의 학생은 최근 한달 사이에 입학해 조금씩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며 "모든게 틀을 잡아가는 시기인 만큼 아직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 대안학교 위탁교육과정이란 일명 "도시형 대안학교"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지난 3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정부가 운영중인 전국 11곳의 대안학교가 대부분 시골에 있다는 불편을 감안해 서울시가 기존 고등학교에 특별히 마련한 과정이다. 청량정보고등학교 외에 한림실업고 성지고에도 이 과정이 개설돼 있다. 지난 5월말 현재 등록돼 있는 학생수는 모두 23명. 연중 어느 때나 입학이 가능하며 대안교육을 받은 뒤에는 이전 소속학교의 졸업장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