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상의 '골프 비사'] 고 이병철 삼성회장 <1> 비거리에 집착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골프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신 분이었다.
이회장은 60년대초 서울컨트리클럽을 자주 오셔서 나도 개인적으로 한 두번 인사를 드리곤했다.
꽤 엄한 인상이었으나 나를 보고 "아,자네가 한장상 프로인가"라며 친밀하게 대해주었다.
이회장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64년 5월쯤이었다.
삼성 비서실에서 이회장이 나와 라운드하고 싶다는 전갈을 해와 함께 라운드를 했다.
이회장은 드라이빙 거리가 당시 2백20~2백30야드에 달할 정도로 꽤 장타자였다.
그래서인지 드라이버샷 거리에 상당히 집착했고 욕심도 많았다.
골프채는 당시 최고급품이었던 ''케네스미스''였다.
그 해에 두세 차례 라운드를 했는데 이 회장은 핸디캡 11∼12(그로스 83∼84타)로 아마추어로는 수준급 골퍼였다.
이 회장은 스윙할 때 어깨가 많이 움직여서 헤드업이 잦았다.
그래서 토핑도 자주 났다.
그러면 나는 "어깨는 옆으로 가도 괜찮습니다만 임팩트할 때는 머리를 고정시키십시오"라고 조언해 드렸다.
이 회장도 가끔 볼이 안 맞으면 "볼을 하나 더 쳐볼 수 없나"하면서 다시 치곤 했다.
이 회장과 라운드가 끝나면 보통 3만원 정도의 사례비를 받았다.
당시 레슨비가 8천원 정도였음에 비하면 3만원은 꽤 큰 돈이었다.
65년에는 내가 외국 대회에 많이 출전하게 되면서 자주 라운드를 하지 못했지만 66년에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라운드를 함께 했다.
67년에는 더욱 잦아져 시즌이 시작되는 3월부터 6월까지 10번 정도 함께 라운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쯤 이 회장이 라운드를 끝내고 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며 초대했다.
그런 뒤 이 회장은 바로 댁에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를 준비토록 했다.
이 회장의 집은 서울 장충동 100이었다.
워낙 유명해 주소까지 기억하고 있다.
집에 들어갔더니 안방에 큰 자개상을 차려놓았다.
단 둘이 먹도록 식사준비가 돼 있었다.
이 회장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가족들은 자리를 지키며 식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이 회장과 단 둘이 식사하는 것도 어려운데다 가족들까지 지켜보고 있어 무척 긴장돼 잘 먹지 못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신경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권유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차를 들면서 이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만났으면서도 한 번도 말씀하지 않은 얘기를 꺼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이회장은 60년대초 서울컨트리클럽을 자주 오셔서 나도 개인적으로 한 두번 인사를 드리곤했다.
꽤 엄한 인상이었으나 나를 보고 "아,자네가 한장상 프로인가"라며 친밀하게 대해주었다.
이회장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64년 5월쯤이었다.
삼성 비서실에서 이회장이 나와 라운드하고 싶다는 전갈을 해와 함께 라운드를 했다.
이회장은 드라이빙 거리가 당시 2백20~2백30야드에 달할 정도로 꽤 장타자였다.
그래서인지 드라이버샷 거리에 상당히 집착했고 욕심도 많았다.
골프채는 당시 최고급품이었던 ''케네스미스''였다.
그 해에 두세 차례 라운드를 했는데 이 회장은 핸디캡 11∼12(그로스 83∼84타)로 아마추어로는 수준급 골퍼였다.
이 회장은 스윙할 때 어깨가 많이 움직여서 헤드업이 잦았다.
그래서 토핑도 자주 났다.
그러면 나는 "어깨는 옆으로 가도 괜찮습니다만 임팩트할 때는 머리를 고정시키십시오"라고 조언해 드렸다.
이 회장도 가끔 볼이 안 맞으면 "볼을 하나 더 쳐볼 수 없나"하면서 다시 치곤 했다.
이 회장과 라운드가 끝나면 보통 3만원 정도의 사례비를 받았다.
당시 레슨비가 8천원 정도였음에 비하면 3만원은 꽤 큰 돈이었다.
65년에는 내가 외국 대회에 많이 출전하게 되면서 자주 라운드를 하지 못했지만 66년에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라운드를 함께 했다.
67년에는 더욱 잦아져 시즌이 시작되는 3월부터 6월까지 10번 정도 함께 라운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쯤 이 회장이 라운드를 끝내고 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며 초대했다.
그런 뒤 이 회장은 바로 댁에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를 준비토록 했다.
이 회장의 집은 서울 장충동 100이었다.
워낙 유명해 주소까지 기억하고 있다.
집에 들어갔더니 안방에 큰 자개상을 차려놓았다.
단 둘이 먹도록 식사준비가 돼 있었다.
이 회장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가족들은 자리를 지키며 식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이 회장과 단 둘이 식사하는 것도 어려운데다 가족들까지 지켜보고 있어 무척 긴장돼 잘 먹지 못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신경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권유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차를 들면서 이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만났으면서도 한 번도 말씀하지 않은 얘기를 꺼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