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을 보고 편작이 말했다.
"임금에게는 병이 있어 지금 피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스리지 않으면 안으로 침노할 것입니다"
"과인에게는 병이 없소"
환공은 불쾌해졌고,편작이 "이익을 탐해 없는 병을 만드는 자"라고 좌우에 폄(貶)했다.
닷새 뒤 편작이 다시 와서 말했다.
"병이 지금은 혈맥 안에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두려운 상태가 될 것입니다"
환공이 또 불쾌해져 "과인에게는 병이 없다"고 했다.
닷새가 다시 지나자 편작은 급해졌다.
"이제 병은 위장 사이까지 왔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큰 변이 나겠습니다"
환공은 역시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다시 닷새 뒤 환공을 방문한 편작은 그의 얼굴만 훑어보고 물러 나왔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이유를 물으니,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외약(外藥)으로도 다스려지고, 혈맥에 있을 때는 쇠침,돌침이 아니면 치료가 되지 않는다.
위장 안에 있을 때는 탕약으로 치료되는 수도 있으나 골수에 있게 되면 신(神)도 어쩔 수 없다.
공의 병은 골수에 침입했으므로 나로서는 치료하라고 말을 할 수 없다"
말을 전하고 편작은 달아나 버렸다.
닷새 뒤 환공은 죽었다.
과거 국가채무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국가빚이 아직 GDP의 20여%에 불과하므로 걱정이 없다고 불쾌해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재정병(財政病)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나랏빚이라고 주장하는 중앙 및 지방정부 채무만 해도 97년말 65조원에서 작년 말 1백18조원으로 3년만에 80%가 뛴 것이다.
여기에 2차 확정된 공적자금 1백4조원 중 태반은 원금회수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거의 합의된 관측이다.
부실이 이미 잘 알려진 4대 연금은 발생기준을 추정해 1998년 말 시점에서 준비금 부족액이 2백9조원에 이르렀고,그 이래 매년 10조원씩 불어날 것이라 했으니 현재 부족액은 2백30조원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1년 예산이 1천만원인 가계에서 온전한 빚이 1천2백만원,빌려준 돈이 1천만원에 확실히 떼일 것이 5백만원,앞으로 지원하지 않고 못 배길 돈이 2천3백만원,이것들이 계속 이자가 붙어 원금을 늘리는 상태라면 이 병은 이미 피부를 넘어 혈맥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환란 이후 무너지는 경제에서 기업과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을 허물지 않을 수 없었던 국가사정을 누가 이해하지 못할 것인가.
문제는 현상보다 그 징후이다.
의약분업사업은 그 시작 첫해에 4조원의 가당찮은 적자를 보이게 했다.
역시 작년에 시작한 기초생활보호제도는 연간 3조원의 재정부담을 안긴다고 했는데,과연 이 정부가 산정한 비용만으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매일 부도를 염려하는 대기업은 흔히 수십조원,개혁이 늦어지는 공기업은 수백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장의 정리는 늦어지므로 은행들은 부지하세월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블랙홀로 남아 있다.
우리 정부는 머리에서 말단까지 중앙 지방 막론하고 공공비용을 쓸 생각만 하고 있다.
십조 백조로 방벽이 터진 마당이니 이제 몇천억원의 비용부담을 추가한들 무슨 문제가 되랴….이익집단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 돈으로 막으면 되는 것이다.
수익사업은 여하간 시작해놓고 보고,소송은 패소가 뻔해도 몇천억원이 결딴나더라도 끝까지 가야하고,보도는 뜯어놓고 예산은 탕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데 백성이 누구 본을 받을 것인가.
편작이 이르기를 사람이 병을 못 고치는데는 여섯가지 불치(不治)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 시작이 ''교만해서 도리를 무시하는 것''이고,그 끝이 ''무당 박수의 말만 듣고 의사의 말은 믿지 않는 것''이다.
아전인수의 숫자만 들어 국가재정의 건전무비를 외치는 정부는 제환공의 교만과 다를 바 없다.
관료의 교언(巧言)과 민심사기에만 혹해 복지사업을 늘려대는 정권은 무당 박수의 말만 듣는 임금과 다를 바 없다.
뒤치다꺼리 팔자에 불과한 국민은 그저 뇌수에 병이 이르기 전에 정부가 대오 각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