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기업정책 ''틀''이 바뀌는가.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4일 "기업관련 규제조치들이 현재 시장상황에 맞는지 전반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을 경제정책의 골간으로 삼아 엄격하게 적용해온 금융 세제 분야의 규제조항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 부총리는 30대기업집단제도나 총액출자제한제도 등 핵심 규제에 대해서는 "이는 구조조정정책의 기본방향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선을 긋기는 했다.

그러나 진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를 현실에 맞춰 과감하게 바꿔 나갈 것이라는데 무게중심이 두어져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 패러다임이 바뀌나=진 부총리는 이날 고대경제인회 조찬 강연에서 "(외환위기 당시 도입한) 규제들을 유연성을 갖고 운영하는 데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여당의원의 입을 빌려 외환위기 때 도입된 대표적 기업규제장치인 ''부채비율 2백% 이내 억제'' 조항을 종합상사 등 일부 업종 기업들에 대해 탄력적으로 적용할 것임을 밝힌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얘기다.

진 부총리가 이날 세제와 관련,"부동산은 과거의 투기 대상에서 소유와 주거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양도세 등 관련세제를 대폭 개편할 것임을 예고한 부분에서도 경제정책의 ''현실론'' 선회 의지가 보다 분명하게 읽혀진다.

최근의 악화된 경기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해운 건설 등 업종에 부채비율 2백%를 요구한 것은 상식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예에 비춰서나 무리한 측면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이런 불합리한 규제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바로 잡겠다는 뜻"이라고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어떤 조치가 뒤따를까=그러나 진 부총리의 이날 연설내용은 다분히 ''선언적''인 것으로 당장 가시적인 후속 조치가 나올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집단제도와 출자제한 등 기업들이 줄기차게 개선을 요구해온 핵심 규제장치들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최근의 수출·내수 부진을 타개하고 경쟁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구조조정 관련 출자의 계속적인 예외 인정 △출자초과분 해소시한의 2∼3년 연장 △기업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한 시장독점 제재 완화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요청해왔다.

이들 조항은 그러나 진 부총리가 말한 ''구조조정의 원칙''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재경부 실무자들도 "부총리가 원고에도 들어있지 않은 규제 개혁을 언급해 혼란스럽다"며 "현재로서는 부채비율 탄력적용 외에는 어떤 추가적인 규제완화 계획도 마련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규제완화로의 이행을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내외 경기 악화로 인해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시점에서 진 부총리가 내놓은 ''현실적 규제완화론''이 단순 립서비스를 뛰어넘어 어떤 후속조치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