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지방법원은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허수주문으로 주가를 조작해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전 L증권 투자상담사 정모(34)씨에게 벌금 50억원을 선고한 것.법인이 아닌 개인에게 50억원이라는 거액의 벌금형이 선고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만큼 허수주문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이같은 허수주문이나 허위공시 등을 통한 주가조작이 성행하면서 "한탕주의"에 멍들고 있다.

기업 본연의 사업과 내재가치 제고와는 관계없는 대주주간 자금 및 지분거래가 그럴듯하게 포장돼 주가를 왜곡시키며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탕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수법은 이른바 A&D(인수후 개발)다.

코스닥 또는 장외업체가 주식맞교환 등을 통해 다른 업체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합병 등을 통해 기업을 키우겠다는 A&D계획을 발표해 주가를 올린 다음 지분을 고가에 처분하는 방식이다.

A&D는 1세대로 꼽히는 리타워텍과 바른손의 경우 코스닥업체가 주도권을 갖고 장외기업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거나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IHIC(옛 신안화섬)도 이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A&D(인수후 개발)설을 바탕으로 지난해 한달여동안 10배 이상 올라 주목을 받았었다.

최근에는 많이 노출된 1세대식 기법이 퇴조하고 새로운 수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2세대로 꼽히는 업체들은 아예 장외기업을 M&A하는 방식으로 전환했고 최근의 3세대들은 거꾸로 장외업체가 코스닥업체의 지분을 인수해 코스닥시장에 우회등록하는 수법을 택하고 있다.

SK증권 기업금융팀 제해진 과장은 "A&D를 추진하는 기업들의 한탕주의 사고가 문제"라며 "정작 건전한 A&D와 M&A마저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가조작으로 이어지는 허위공시도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이달들어서만 10개가 넘는 코스닥기업이 증권당국으로부터 루머의 진위여부에 대한 공시를 요청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외자유치나 합병 등과 관련한 호재성 루머들이다.

LG증권의 시황 관계자는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조회)에 나선 루머는 10여건이지만 실제 시장에 떠돌아 다니는 루머는 60건 이상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들 루머중 "대박"으로 연결되는 진짜로 판명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데 씨앤텔은 지난2월 21일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컨소시엄을 구성,TV홈쇼핑 사업을 추진한다는 지난 1월30일 공시를 뒤집어 매매가 하루동안 정지됐다.

알루코는 1년여동안 미국현지법인의 나스닥상장 추진 공시를 내오다 지난3월 10일 "추진 중단"을 공시해 투자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M&A나 외자유치와 같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루머의 근원지는 해당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회사측이 주가부양용으로 의도적으로 루머를 유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수주문도 작전종목의 경우 애용되는 수법이다.

그러나 증권업협회 성인모 감리팀장은 "이들의 수법이 갈수록 치밀해진데다 감리인력에 한계가 있어 모든 허수주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