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기업은행 남동공단 지점장.

그는 4월 들어 공단내 거래업체 방문 횟수를 2배 이상 늘렸다.

거래업체 ''수성(守城)''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해온 우리 고객을 빼내가려는 은행이 한두군데가 아니다"라며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루 평균 10여개사를 찾아다니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우량고객 유치경쟁이 가열되면서 이런 신 풍속도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대출 전쟁''이다.

서민을 대상으로 연 1천% 안팎의 고금리를 뜯어가는 ''사금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는 전연 딴판의 풍경이다.

신용이 좋은 고객에겐 지점장이 책임지고 금리를 깎아주면서 대출세일에 나서는 것은 기본.

최근엔 다른 은행의 고객을 서슴없이 가로채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지난 6일 모은행 서울 방화동 지점.

수년째 이자를 꼬박꼬박 내오던 단골 거래기업인 A사가 난데없이 대출금을 갚겠다고 찾아왔다.

돈을 빌려갈 우량 기업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지점장에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얘기였다.

A사측은 "다른 은행이 지금 조건보다 싼 금리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제의해 왔다"고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우량고객을 빼앗긴 지점장은 "경쟁도 좋지만 남의 고객을 가로채가는 것은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은행의 고객 빼앗기 경쟁은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 내에선 모 은행 직원들의 가정방문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들은 담보대출을 쓰고 있는 가정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현재 이자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테니 우리 은행으로 대출을 옮기는게 어떻겠느냐"고 설득하고 다녔다.

근저당설정비 등을 은행이 대신 내주는 조건도 내걸었다.

은행권의 이같은 경쟁은 대출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 1분기중 아파트담보대출만 1조2백32억원을 늘렸다.

하나와 조흥은행도 이 기간중 5천2백91억원과 2천5백12억원을 아파트담보대출로 풀었다.

금융회사들의 대출 경쟁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은행문턱이 낮아졌다며 환영하고 있다.

코스닥 등록 벤처기업인 누리텔레콤 조성만 사장은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데도 대출제의가 쏟아져 거절하기 바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과 개인들에게는 은행의 문턱이 오히려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자금 배분의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심화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금융계는 지적하고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