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특히 외교통상부에 대해 대미 ''외교''는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더라도 대미 ''통상'' 문제 만큼은 마찰없이 풀어가라는 주문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7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평가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언론들은 대북문제를 두고 양국 정상간에 상당한 시각차가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정부도 언론의 확대해석을 걱정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혀오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대북 회의론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멀리서 우방국의 대통령이 찾아왔다면 논어에 나오는 대로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에 해당하는데 주인 쪽이 크게 즐거워하지는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상회담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유추되지만 그 중 몇 개를 꼽아보기로 하자.

첫째,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와는 상이한 철학과 성향을 바탕으로 외교 국방 경제 정책면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전통에 따라 보수적 친기업적 성향을 가지며 사회주의국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둘째로 부시 정부의 대북전략이 조율되고 확립되기도 전에 우리측이 너무 일찍 방문함으로써 혼란이 야기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연관되는 일로 우리 정부가 미 공화당정부와는 아직 인맥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해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부시 취임식 직전 일본의 어느 경제잡지는 "(한국의) 현 정권이 원래 민주당과의 파이프는 굵었었지만 공화당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해 새로운 관계구축의 모색을 시작한 것 같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부시 대통령이 불역낙호(不亦樂乎)의 군자다운 풍모를 보이지 못한 점을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클린턴에 대한 반감 때문에 경제호황 대북관계개선 등 전임자의 업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김 대통령과의 견해차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노출한 것은 좋은 매너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달 28일에는 한.미 통상장관 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리게 된다.

이에 앞서 지난 주말에는 미국 통상대표부의 부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실무단이 방한해 국내 통상부처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고 있다.

미국쪽에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통상문제에는 수입차시장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조달시장 개방,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WTO 규정위반 등이 포함되며 철강수출물량 축소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부문이나 우리 경제로서는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고 양국의 입장차이가 커 의견조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을 양국 신임 통상장관들의 수인사나 탐색전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며 우리 정부로서는 정상회담의 경험을 거울삼아 잘 개발된 논리와 전략을 갖추고 회담장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회사채 인수제도와 같이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입한 불가피한 정책들이 무역상대국 입장에서는 보조금 지급사례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각종 정책들을 수립하고 시행하기에 앞서 국제규범에 맞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고 입안과 시행과정에서 투명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미 양국의 현안을 풀어가는데 있어 인맥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새정부의 요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를 정부 고위직에 중용하는 것과 아울러 민간 기업인들의 인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든 통상이든 대미 교섭에 있어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아직 제모습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부시정부의 시행착오에 경거망동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로서는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대응해 가야 한다.

/본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