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함께 하는 추억의 시간 여행.

신현림(40)시인의 박물관 기행 산문 ''시간창고로 가는 길''(마음산책)은 그리운 편지 묶음같다.

지난 1년간 카메라를 메고 우리 땅 구석구석의 박물관 46곳을 찾아다니며 쓴 여행기다.

그는 털털거리는 시골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감춰진 고샅길을 혼자 오르내리며 이 글을 썼다.

뱃속의 아이가 여행길 내내 함께 다녔다.

그래서 시인에게 이번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또 하나의 ''복덩이''라고 할까.

내달 출산을 앞두고 한달쯤 먼저 나온 쌍둥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단했지만 풍요로운 여행이었습니다.

호기심과 열정에 들떠 온 나라를 다 뒤지고 다녔죠.

사소한 것들도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오곤 했어요"

그는 단순히 박물관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고요와 느림의 이면을 햇살 아래 환하게 드러낸다.

박물관까지 가는 길이나 주변 풍광에서 받은 느낌들도 물흐르 듯 편안하게 보여준다.

용인 등잔박물관에서 그는 ''심지에 성냥불을 대는 순간 따뜻한 눈물처럼 차오르는 등불''을 생각한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람에게 빛을 나눠주는 등잔의 철학.

''생을 마감한 뒤에 남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나눠줬던 것''이라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새겨본다.

파주 두루뫼박물관으로 가는 동안에는 애틋한 사랑 얘기에 눈물짓는다.

조선시대 문장가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슬픈 사연.

''산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밤비에 새 잎 나거든 이 몸으로 여기소서''

그리움에 사무치는 홍랑의 시를 읊으며 걷는 길.

시인의 눈에 비친 장독대와 솟대는 금방이라도 손을 내밀어 얘기를 걸어올 것만 같다.

사진 밑에 덧붙인 설명들도 맛깔스럽다.

용인 옛돌박물관에서 만난 돌장승에게 그는 ''싸악,미소짓는 것이 여간 섹시하지 않아''라는 헌사를 바쳤다.

책 뒤에는 우리나라 박물관들의 주소와 전화번호,휴관일을 별도로 정리해놓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