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 김영사 사장 pearl@gimmyoung.com >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아주 시무룩한 목소리다.

"나 어떡하지? 참을성이 너무 없나봐"

직장에서 늘 눈에 거슬리게 행동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 데 결국 오늘 한판 붙어 싸웠다는 얘기다.

끝까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밖으로 행동을 드러낸 게 영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정색을 하고 위로했다.

"얘 화내는 것도 용기야.가끔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줘야 너도 살지.잘했어"

자제력이 없었음을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나는 네가 얼마나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이며 더구나 마음의 화산을 한번씩 분출해주는 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역설했다.

친구는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전화를 끊었다.

며칠 전에는 내가 이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무척 마음에 드는 독일 책을 한 권 발견했는 데,이거야말로 꼭 우리 회사에서 내야겠다 생각하고 재빨리 알아보니 이미 국내의 다른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이 돼있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과 컨셉트,광고문안까지 머리 속에 미리 그려질 정도로 책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있었는 데 못 낸다고 생각하니,무척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나의 이런 얘기를 들은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혼자서만 좋은 책 다 낼래? 잘 한 거야.다른 사람도 좋은 책 내는 기쁨 맛보고,게다가 잘 팔리면 그 집한테도 좋은 거잖아"

친구의 그 말에 나의 안타까움은 사라졌다.

그렇구나,내가 놓친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눈 거구나.

언젠가 친구와 나는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사는 게 힘들고 우울할 때,자신이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 때 서로에게 전화를 하자고.

그러면 전화받은 사람은 상대방이 얼마나 괜찮고 매력있는 사람인지를 상기시켜 주자고.

비록 실수를 해서 다른 사람은 편들어주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를 옹호하고 다독여주자고.

한마디로 서로의 ''우울대책반''이 되기로 한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끔찍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우울함에서 건져줄 수 있는 삶의 ''기쁨조'',우울대책반 한 사람쯤 주위에 두면,그리고 나 역시 상대방이 원할 때 그 역할을 해주면 훨씬 살기가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