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웅 <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 kwom@kcci.or.kr >

요즈음 인기 드라마 ''왕건''의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시청률이 40%를 웃돌고 후삼국시대를 재조명한 소설이 잘 팔리고 있다.

드라마를 소재로 한 게임도 출시된다고 한다.

왕건에 빗댄 어느 정치인의 소신발언이 뉴스거리가 되고 지방 촬영장소가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술자리에서도 드라마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주인공 왕건보다는 궁예가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궁예가 진짜 영웅이다,드라마 이름을 ''궁예''로 바꿔야 한다는 등 정사(正史) 속에서 애꾸눈 폭군 정도로 평가됐던 그에 대한 인기가 자못 높다.

후삼국을 통일한 주인공은 분명 왕건인데 시청자들이 궁예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역사 속의 패배자로 숨겨져 있었던 궁예에 대한 호기심,왕자로 태어나 승려에서 황제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주는 고난과 역경,그리고 대륙 제패의 꿈을 못버린 모험가다운 한 영웅의 영광과 파멸.

그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이 1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진한 감동 때문이리라.

이 드라마를 보면 누구나 신라 말기의 혼란상이 IMF 환란 이후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봄직하다.

잦은 전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자와 끈끈한 혈연관계를 맺는 1천년 전 지방 토호들이나 합병 제휴 등 갖가지 전략을 앞세워 살아남으려는 오늘날 기업들이나 그 처지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의 신시대가 열리면서 수많은 이들이 성공을 꿈꾸며 벤처대열에 뛰어들었다.

벤처스타도 탄생했다.

하지만 태어나고 죽는 끊임없는 기업들의 부침 속에서 진정한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후삼국 전반부시대 영웅은 궁예였으나 마지막 승자는 그의 밑에서 23년을 기다려온 왕건이었던 것처럼.

일전에 한 정책 연구가가 기업을 일구고 키워나가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고 혼신을 다하는 ''신영웅''들이 많이 탄생해야 우리 경제가 발전해 나간다고 했다.

아주 공감이 가는 말이다.

치열한 글로벌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기업인들의 초인적 노력과 모험을 감수하면서도 부를 창출하려는 의지,그 자체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소중한 에너지원이고 성장원동력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