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서 애타게 이륙신호를 기다리는 일본 경제를 난기류에 빠뜨릴 수 있는 태풍의 하나는 줄잇는 기업도산이다.

지난해 매출부진과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 일본 기업들의 수는 1만9천71개사로 사상 최고치(1985년의 2만8백41개사)에 바짝 근접했다.

도산기업들의 부채는 23조9천8백74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루평균 약 60개의 기업이 넘어졌다.

기업도산 건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기업도산이 건수와 부채 총액에서 모두 사상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도산태풍이 그 어느 때보다 잦아지고 파괴력도 강해질 것이라는 근거는 하나 둘이 아니다.

도쿄증시에서 주가가 1백엔 밑으로 떨어진 이른바 ''다마(동전)''기업의 수는 지난 1월 중순 1백8개에 달했다.

이는 작년 6월말의 74개에 비해 절반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회사 속사정을 반영하는 주식값이 껌한통 값만도 못한 이런 기업들에 은행 등 금융권이 자금지원을 제대로 해줄 리가 없다.

당연히 도산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마''기업들 중에는 도큐백화점 야스다신탁은행 스미토모금속 고베제강 레나운 등 한국에도 이름이 잘 알려진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증시분석가들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제도적 장치다.

일본에서는 간이형 기업재건절차가 일반화돼 종전보다 법의 울타리로 기업들이 피신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법원에 구조신호를 보낸 기업들의 부채는 고스란히 금융기관들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기업들의 일시적 도산을 막기 위해 만든 특별신용보증제도의 기한이 오는 3월로 끝나는 것도 대량도산을 부를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가가 쳐준 안전망이 없어지면 근근이 버텨온 중소·영세기업들이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대량도산에 불을 댕길 채무과다 회사들을 ''폭탄기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표적인 폭탄기업들로는 건설의 후지다와 아오키건설,유통의 다이에를 꼽고 있다.

쓰러지는 기업이 늘어나면 은행의 돈줄이 마를 수밖에 없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니 다른 기업에는 돌아갈 돈이 없다.

따라서 자금수혈 대상에서 밀려난 기업들은 도산위기에 몰리게 된다.

기업도산이 자금경색을 부르고,자금경색은 또 다른 부도를 초래하면서 금융기관에 치명타를 가할 우려가 높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의 다카하시 죠센 고문은 "올해 일본경제가 증시추락과 기업의 대량 도산으로 버블이후 최악의 해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

<<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