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부총리 말씀이야 지당하지만 은행들은 들은 척도 않습니다"

대기업자금담당 임원들은 지난 21일 금융기관들의 소극적인 기업지원자세를 질타한 진념 경제부총리의 언급에 고무되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별로 기대하지않는 눈치들이다.

정부정책이 은행창구에 먹혀들지 않은 지가 오래됐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다.

기업들은 "부실채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은행들을 이해는 하지만 무역금융까지 경색되고 해외법인이 자금운용에도 어려움이 여전해 경영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특히,바이오를 비롯한 첨단미래산업에 대한 투자에 대해선 대부분의 은행들이 거부반응을 보이고있어 산업구조조정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LG SK같은 우량대기업 계열의 일부 자금담당들까지 말할 정도다.

이른바 중견그룹들과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은 정부의 요란한 지원책과는 달리 금융기관의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로 오히려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금리가 내려도 돈 구경하기 힘들어서 실감을 못한다"고 말한다.

◇편법 자금회수 여전=작년 말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던 현대전자는 지난 1월에 국내 14개 금융기관으로부터 6억달러의 수출환어음(D/A) 추가 한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은행들은 한사코 난색을 보였지만 금융 당국의 중재로 어렵게 받아낸 약속이었다.

사실 현대전자의 D/A는 초우량 컴퓨터 회사에 반도체를 수출하고 받은 것이어서 떼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후 은행들은 현대전자의 D/A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5억5천6백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들은 D/A를 매입하는 규모만큼 수입 LC개설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지원 효과는 유명무실해진다.

약간의 리스크만 있어도 금융기관이 자금 대출을 꺼리는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중장비 등 플랜트 수출업체들이 해외 수주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한 중장비업체는 국내 금융 기관에서 이행보증서를 얻지 못해 외국계 금융사에서 보증서를 받아 3천만달러 규모의 플랜트를 중동지역에 수출할 수 있었다.

◇대기업 해외법인 자금운용 차질=대우 사태 등으로 금융권이 대기업 해외법인에 대한 자금 지원을 꺼리면서 중견 기업 해외법인들이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30대 계열 기업의 경우 해외 현지금융 제한을 받고 있어 현지 시장상황이나 품목 특성에 맞는 마케팅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 법인에 대한 자금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중장기적으로 수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의 몸사리기 정서가 문제=대한상의 관계자는 "중견기업들의 경우 자금상황이 힘들다는 소문만 나돌아도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보지도 않고 자금 회수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소연한다"고 전하고 "그 결과 자금악화 소문이 진실로 둔갑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김석중 조사본부장은 "금융기관이 미래의 사업성을 감안하지 않고 과거의 재무제표에 의존해 대출을 결정하는 관행이 이어질 경우 담보가 부족한 기업은 은행돈을 빌려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에도 아직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건설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98년 도입한 ''건설공사담보대출 특별보증''제도는 30대 계열기업군을 제외하는 바람에 정책 효과가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다.

재계는 동일인·동일계열 신용 공여한도에 대한 규제도 재검토해줄 것을 원하고 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