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의 박수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20년은 우리네 마음에 고향의 정서와 향수를 농사짓는 세월이었습니다"

최불암씨는 오는 3월4일로 1천회를 맞는 전원일기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19일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1천회 기념 간담회에는 전원일기의 붙박이 출연진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유인촌 고두심 박은수 박순천 김혜정 등 20여년 동안 한결같이 전원일기와 함께 했던 얼굴들이다.

할머니 역의 정애란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드라마 1천회.

20여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은 분명 국내 방송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다.

지난 80년 10월21일 ''박수칠때 떠나라''로 첫회를 시작한 이후 20년 3개월을 한길로 달려온 끝에 이룬 성과다.

당연히 축복과 기쁨으로 가득해야 마땅한 자리였으나 연기자들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훨씬 진하게 묻어났다.

김혜자씨는 "더 이상 전원일기속의 아버지와 어머니상이 유효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동안 권태기와 기복도 많았고 때로는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연기자로서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는 데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잦은 작가교체로 인해 극중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맞대거리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때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역시 시청자였다.

"하루에 녹화테이프를 세번씩 본다는 할머니의 사연에 이제 전원일기 출연을 연기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맏며느리 역의 고두심씨 역시 "요즘 세상에 그런 며느리가 어디 있느냐"는 핀잔을 듣는다고 한다.

"20년 동안 한국의 전형적 며느리역을 해오다보니 이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시청자들의 지적대로 큰 며느리의 이미지는 이제 고루해지기도 했죠.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지키고 싶은 역이고 시청자들이 ''문 닫아라''하기 전까지는 사명감으로 계속할 생각입니다"

극중 가업을 이어받은 둘째아들 역의 유인촌씨는 "20년 넘게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원일기는 지난 93년 김정수 작가가 그만뒀을때와 96년 아버지가 국회진출을 위해 밖으로 나가셨을 때 두번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천회를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는 것도 이제 시청자들이 보지도 않고도 보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친숙한 드라마가 됐지만 정작 시청자들과의 거리는 더욱 커지는 현실에 직면해있기 때문입니다"

최불암씨는 "모든 연기자들이 20년 동안 한결같은 인생을 살았다"며 "나름대로 아쉬움이 많겠지만 전원일기의 존재 자체에 그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3월4일 1천회에는 ''양촌리 김회장댁''을 방송한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