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 농협 신용부문 대표이사 >

서두칠 사장은 나와 농협중앙회 입사 동기생이자 진주고 동창이다.

지난 1965년 당시 50대 1의 치열한 경쟁률(50명 모집에 2천5백명 지원)을 뚫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는 동기보다 빨리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입사 10년쯤 되던 어느날 그는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훌훌 털고 떠났다.

당시 국내에는 변변한 제조업체가 거의 없었다.

직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그가 걱정되기도 했다.

직장인으로 계속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줄곧 그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는 결국 진주고 동기생중 현역에서 뛰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인중 하나로 성공했다.

회사 일이 바빠서인지 요 근래 3년간은 가끔 갖는 동기회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오더라도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구미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족을 생각해 혀를 끌끌 찬 적이 있을 정도다.

돌이켜보면 그는 남달리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그는 중학시절 40리 길을 걸어서 등하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진주농대 부설 교원 양성소를 거쳐 진주농대에 편입해서 대학을 마쳤다.

어렵사리 다닌 학교생활이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아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과 민첩한 행동은 어릴 적 등하교의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는 농협중앙회에 다닐때 매우 학구적이었다.

당시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다녔는데 그 때 석사학위 논문이 농협 낙농회계의 특별 회계부문 지침서가 됐을 정도다.

지난해 12월 농협중앙회는 서 사장을 초청해 임직원 특강을 실시했다.

그의 놀라운 경영성과에 대해 지배주주인 일본의 아사히 글라스 경영자들이 기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은 그의 표현대로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존중했을 따름일 것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분야를 찾으며 일을 몰고 다닌다.

그 일을 통해 보람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삶이 일이고 일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

골프도 치지 않으며 일이 취미이자 특기다.

행복도 일속에서 얻어낸다.

서 사장은 이렇게 특이체질이다.

하지만 그의 생활철학은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접 붙일 때 뿌리나무로 쓰는 대목처럼 쓰여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