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했던 최고의 명차 캐딜락과 링컨은 한국에서도 "세계 정상들이 타는 차"로 잘 알려져 있다.

아직도 전통과 품위가 있는 세계 3대 최고급 자동차를 꼽으라면 영국의 롤스로이스,독일의 벤츠와 미국의 캐딜락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도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한 번 타 보기도 힘들다는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선두 주자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 스타다.

링컨 컨티넨탈과 함께 대통령 전용차로 쓰이고 있다.

캐딜락이 백악관 전용차가 된 것은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때부터였다.

후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자 자신의 캐딜락을 몰고 4개월 동안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캐딜락과 링컨을 탄생시킨 사람은 웬만한 자동차 매니아가 아니면 알지 못할 것이다.

캐딜락과 링컨의 탄생은 헨리 릴랜드에 의해 이뤄졌다.

헨리는 1843년 잉글랜드에서 이민온 소장수의 아들로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났다.

12살때부터 정밀가공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남북전쟁중에는 총 제작에 필요한 도구을 만들었다.

그후 1/1천인치의 정확도를 낼 수 있는 기술로 이발기계를 만들어 냈다.

헨리는 24세가 되던 해에 디트로이트에 기계공장을 세우고 올즈모빌 설립자인 랜섬 올즈(Ransom Olds)에게 부품을 납품하게 된다.

하지만 1901년 헨리가 제작한 10.25마력의 엔진을 올즈가 받아들이지 않자,헨리는 같은 모델인 경우 부속품을 서로 바꿔 끼워도 문제없는 부품 호환성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헨리는 결국 1902년에 자금난에 허덕이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캐딜락이란 이름으로 자동차회사를 세운다.

당시 창업자의 이름으로 회사이름을 짓는게 일반적이었으나 헨리는 특이하게 1701년 디트로이트를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앙트완느 드 모드 캐딜락 장군의 이름을 택했다.

핸리는 1기통 시속 48km의 2인승인 캐딜락 1호를 만들며 당시 미국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영국으로 진출하나 영국귀족들의 냉대에 부딪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때 캐딜락의 우수성을 증명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의 자동차는 부품을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모양에 약간씩의 오차가 생겨 고장이 나면 부품을 갈아끼우기가 매우 어려웠다.

1908년 영국의 자동차판매업자 바네트는 캐딜락의 부품들이 정교하다는데 착안해 캐딜락 신형모델 3대를 분해하여 섞은 다음 황실자동차클럽회원들 앞에서 차를 다시 조립하여 8백km를 쉬지않고 달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캐딜락은 영국에서도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었다.

캐딜락은 부품표준화를 향한 릴랜드의 노력으로 부품교체가 가능한 최초의 자동차였으며,자동시동기,전기전조등을 선구적으로 채택하기도 했지만 결국 1908년 GM의 간판차종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GM에 매각하였다.

그는 1917년 비행기엔진 제작 회사를 건립하지만 결국 다시 자동차 회사로 전환 1920년에 링컨 1호차를 만든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1922년 헨리 포드에게 넘기고 만다.

헨리 릴랜드는 이렇게 일생을 미국의 고급차를 만드는데 바치고 1932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손을래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