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채 수익증권 환매연기는 무효라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졌다.

금감위가 환매대금 지급을 유예시킬 법적 권한을 갖고있지 않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급유예 조치는 금융기관과 금감위 사이에서만 유효할 뿐 고객에게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서울 민사합의 14부의 판결이다.

관련 소송이 봇물을 이룰 수도 있는데다 금융당국의 행정 권한에 일정한 한계를 그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와 파장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대우채에 대해서는 기간에 따라 실제가치보다 훨씬 많은 환매금이 주어졌다지만 환매요구 시점과 수익증권의 종류에 따라 무수한 경우의 수들이 발생할 것이고 보면 우선 적지않은 유사 소송이 터져나올 것도 예상할 수 있겠다.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환매유예 조치가 있기 전인 99년 봄부터 투신사들과 갈등을 빚었었고 8월에 가서야 때늦은 환매유예 조치가 취해졌음을 고려한다면 환매유예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고객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금감위의 환매 유예가 적법한 조치인가 하는 의문은 이미 당시에도 여러차례 제기된바 있다.

투자신탁업법 개정을 통한 환매유예 조항의 폐지(98년9월)와 그 시행을 1년 유보한 부칙, 그리고 이 기간 중에 일어난 유예 조치의 적법성 등이 법률적인 쟁점이라 하겠으나 사안의 본질은 역시 금융당국의 행정조치가 어느 수준까지 용인될 것이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개정전 증권투신업법이 천재지변이나 증시 폐쇄 등의 경우에 한정해 환매를 유예할 수 있도록 했을 뿐이어서 대우채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대우채 환매유예는 말그대로 행정편의요 불법적인 조치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 되고 만다.

문제는 대우채 이후에도 금융시장 안정을 내세운 허다한 행정지도가 있어왔고 당국의 방침이 내려질 때마다 적지않은 반발도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일은행이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나 하나은행이 특정 금전신탁 고객에게 대기업 CP를 실물 형태로 인도하면서 당국과 마찰을 빚은 것 역시 행정지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구조조정 와중에 있는 금융시장의 여러가지 다급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다급하다고 해서 그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행정수단을 빼드는 식이라면 이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이번 판결은 바로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