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성재갑 ..늘 회사주인처럼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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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을 단순한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LG화학은 물론 그룹에서도 성재갑 부회장을 단순한 전문경영인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오너와 다를 바 없는 최고경영자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룹의 전략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에서도 그는 최고 연장자로서 분위기를 좌우한다.
1963년 부산대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38년동안 LG화학의 성장과 함께 숱한 성공스토리를 연출했다.
요즘같은 유화경기 불황기에도 변함없는 흑자를 내는 데는 성 부회장의 기여가 크다는게 주위의 평이다.
그는 지난 96년 단기간내 사업구조를 혁신하는 TA(Turnaround)작업에 착수해 실적이 경기에 따라 요동치는 "천수답" 사업구조를 벗어나도록 했다.
당시 TA의 모범기업으로 불리던 독일 휼스사를 방문하고 귀국하자마자 비상경영위원회를 긴급 소집, 간부들에게 개혁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TA 착수를 선언했다.
그는 "휼스사로부터 받은 충격이 가시기 전에 실천에 옮기고 나 자신이 물러서지 않도록 구속하기 위해서 였다"고 말한다.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었다.
3년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업은 포기한다는 원칙에 따라 16개나 되는 사업부가 문을 닫았지만 나머지는 세계시장을 향해 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어떤 일이든지 물러서지 않고 해결하고야마는 그의 집념이 빛을 발한 것은 지난 80년 바닥장식재 등을 담당하던 프라스틱2 사업부 담당 이사 때였다.
지금은 2개 본부에 23개과를 거느린 사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만년 적자사업이어서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부서였다.
그는 미국 암스트롱사로부터 건물용 바닥재 "암스트롱" 제조기술을 도입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자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수 년에 걸쳐 "암스트롱" 샘플을 분석하고 기술 개발에 열중한 끝에 "럭스트롱"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 엄청난 이익을 회사에 안겨줬다.
그는 이때의 성공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89년 럭키석유화학(현 LG석유화학) 사장을 맡은 뒤 연산 45만t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NCC)을 예정된 공기의 절반인 1년6개월만에 완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요즘에도 이같은 초단기 공사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론상 용량을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가 66만t에 불과한 공장용량을 75만t으로 확장, 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루모스"사로부터 "기적이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석유화학의 주요 분야를 모두 섭렵한 그는 "하고 싶은 일들을 원없이 했다"고 회상한다.
어느 공장을 가더라도 현장기술자들과 대화하고 문제를 집어내는데 막힘이 없다.
그는 요즘도 공장을 방문하면 4-5시간에 걸쳐 공장 구석구석을 발로 누빈다.
걸음도 빨라 수행 직원들이 헉헉 댈 정도다.
성 부회장은 간부들에 대해서는 솔선수범을 강조한다.
부장시절 부산 연지공장 부공장장을 맡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해 사업장을 정리하며 돌아다녔다.
부하직원들한테 아무런 얘기도 안했지만 전 공장직원들이 일찍 출근해 연지공장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된 사업장으로 변모했다.
그는 인사에서도 지연이나 혈연을 한 번도 따져본 적이 없다.
LG화학에서 인사와 관련한 잡음이 없는 것은 이같은 공정성 때문이다.
"바르게 생각해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바르게 실천할 수 있다"는게 그의 경영철학인 "정도경영"이다.
성 회장이 다음 목표로 세운 것은 생명과학이다.
오는 4월1일 LG화학에서 분리돼 지주회사와 생명과학을 담당하게 될 LG-CI를 한국을 대표하는 생명과학회사로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한국과 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선 꼭 해야 할 사업이라는 것.
올 설 연휴때도 그는 "생명의 사회-바이오토피아"라는 책을 탐독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전략적이고 실행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잭 웰치 GE회장을 닮았다고 한다.
그도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잭 웰치를 꼽는다.
성 부회장이 잭 웰치와 같은 집념과 결단으로 LG-CI를 세계적인 바이오회사로 키울지 관심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
LG화학은 물론 그룹에서도 성재갑 부회장을 단순한 전문경영인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오너와 다를 바 없는 최고경영자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룹의 전략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에서도 그는 최고 연장자로서 분위기를 좌우한다.
1963년 부산대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38년동안 LG화학의 성장과 함께 숱한 성공스토리를 연출했다.
요즘같은 유화경기 불황기에도 변함없는 흑자를 내는 데는 성 부회장의 기여가 크다는게 주위의 평이다.
그는 지난 96년 단기간내 사업구조를 혁신하는 TA(Turnaround)작업에 착수해 실적이 경기에 따라 요동치는 "천수답" 사업구조를 벗어나도록 했다.
당시 TA의 모범기업으로 불리던 독일 휼스사를 방문하고 귀국하자마자 비상경영위원회를 긴급 소집, 간부들에게 개혁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TA 착수를 선언했다.
그는 "휼스사로부터 받은 충격이 가시기 전에 실천에 옮기고 나 자신이 물러서지 않도록 구속하기 위해서 였다"고 말한다.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었다.
3년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업은 포기한다는 원칙에 따라 16개나 되는 사업부가 문을 닫았지만 나머지는 세계시장을 향해 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어떤 일이든지 물러서지 않고 해결하고야마는 그의 집념이 빛을 발한 것은 지난 80년 바닥장식재 등을 담당하던 프라스틱2 사업부 담당 이사 때였다.
지금은 2개 본부에 23개과를 거느린 사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만년 적자사업이어서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부서였다.
그는 미국 암스트롱사로부터 건물용 바닥재 "암스트롱" 제조기술을 도입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자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수 년에 걸쳐 "암스트롱" 샘플을 분석하고 기술 개발에 열중한 끝에 "럭스트롱"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 엄청난 이익을 회사에 안겨줬다.
그는 이때의 성공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89년 럭키석유화학(현 LG석유화학) 사장을 맡은 뒤 연산 45만t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NCC)을 예정된 공기의 절반인 1년6개월만에 완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요즘에도 이같은 초단기 공사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론상 용량을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가 66만t에 불과한 공장용량을 75만t으로 확장, 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루모스"사로부터 "기적이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석유화학의 주요 분야를 모두 섭렵한 그는 "하고 싶은 일들을 원없이 했다"고 회상한다.
어느 공장을 가더라도 현장기술자들과 대화하고 문제를 집어내는데 막힘이 없다.
그는 요즘도 공장을 방문하면 4-5시간에 걸쳐 공장 구석구석을 발로 누빈다.
걸음도 빨라 수행 직원들이 헉헉 댈 정도다.
성 부회장은 간부들에 대해서는 솔선수범을 강조한다.
부장시절 부산 연지공장 부공장장을 맡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해 사업장을 정리하며 돌아다녔다.
부하직원들한테 아무런 얘기도 안했지만 전 공장직원들이 일찍 출근해 연지공장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된 사업장으로 변모했다.
그는 인사에서도 지연이나 혈연을 한 번도 따져본 적이 없다.
LG화학에서 인사와 관련한 잡음이 없는 것은 이같은 공정성 때문이다.
"바르게 생각해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바르게 실천할 수 있다"는게 그의 경영철학인 "정도경영"이다.
성 회장이 다음 목표로 세운 것은 생명과학이다.
오는 4월1일 LG화학에서 분리돼 지주회사와 생명과학을 담당하게 될 LG-CI를 한국을 대표하는 생명과학회사로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한국과 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선 꼭 해야 할 사업이라는 것.
올 설 연휴때도 그는 "생명의 사회-바이오토피아"라는 책을 탐독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전략적이고 실행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잭 웰치 GE회장을 닮았다고 한다.
그도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잭 웰치를 꼽는다.
성 부회장이 잭 웰치와 같은 집념과 결단으로 LG-CI를 세계적인 바이오회사로 키울지 관심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