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전 수필 ?도연초(徒然草)?(바다출판사)가 번역됐다.

13세기 초 교토에 살던 스님 요시다 겐코가 쓴 도연초는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겐코는 일본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로 문명을 날리던 인물.1283년에 태어나 30세에 출가,40년간 와카 1백여편을 쓴 뒤 60세에 와카 시집 ''겐코호시카슈''를 펴냈다.

도연초는 겐코 스님이 ''무료하고 쓸쓸할 때''붓가는 대로 써내려간 산문이다.

도연(徒然)은 달릴 뿐이라는 의미를,초(草)는 사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겐코 스님은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교와 노장 사상을 접목,잠언시풍의 산문을 완성했다.

동양의 여러 사상을 심미적으로 종합해냈다는 점에서 일본 문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보다 가벼운 사람의 마음을 믿고 정을 나눈 세월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일찍이 세상을 등진 어떤 이는 ''세속적인 일에는 미련 없으나 그날 그날 하늘을 보며 감명 깊었던 그 순간들은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과연 공감이 가는 말이다''

불문(佛門)에 적을 둔 겐코 스님은 무엇보다 청빈을 강조한다.

''황금은 산에 묻고 진주는 바다에 던져 버리라''는 권유가 그것이다.

''옛날 중국의 허유(許由)는 몸에 아무런 재물도 지니지 않아 물 마실 때도 손으로 떠 마셨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사람이 표주박을 건네줬다.

어느날 바람결에 표주박이 달그락 거리자 허유는 그 소리가 거슬린다며 표주박을 내던졌다''

겐코 스님에 따르면 인간의 생명이란 구멍이 숭숭 나있는 커다란 물통과 같다.

당장은 작은 구멍에서 물줄기가 새나오는 정도로 인식되지만 결국 물이 다 빠져 빈통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옛날 스님들은 누가 찾아올 때마다 "나 지금 아주 급한 일 있어.중요한 일이 눈앞에 와 있거든"하며 귀를 막고 염불만 외웠다.

그는 죽음이 바로 다음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삶에 대한 외경은 죽음에 대한 명징한 의식에서 나온다.

''행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수행할 때 졸음이 쏟아지는데 벗어날 길이 없을까요" 스님이 대답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염불하십시오"''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자는 이미 죽은 자와 같다.

그러나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없다.

천명에 순응하는 삶이 복된 것이다.

겐코 스님의 ''도연초''는 칼이 지배하는 시대,삶의 무상을 일깨워주는 글을 담고 있다.

역자 채혜숙씨는 한국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도호쿠대에서 도연초를 공부했다.

일평생 도연초와 겐코 스님을 연구한 채씨는 현재 암투병 중이다.

번역 원고는 투병 중에 완성됐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