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9일 충남 천안시는 성환하수종말처리장 건설공사를 자체 발주했다.

T기업 등 3개사가 낙찰받은 이 공사에는 2003년까지 총 4백45억이 들어간다.

이 공사는 정부의 공식창구인 조달청을 거치지 않은채 천안시가 자체적으로 시공업체를 선정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설계 등 공사내용을 정밀분석하지 않아 단정키는 어렵지만 조달청을 통하면 보통 공사비용을 6%가량, 공사의 성격에 따라 최대 20%까지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각종 공사를 자체적으로 발주한다.

지난 한햇동안 각 지자체의 1백억원 이상 대형 공사중 조달청을 통한 공사는 39건(계약금액 9천3백17억원)뿐이다.

반면 지자체가 자체 발주한 것은 74건(1조9천6백57억원).

김성호 조달청장은 "74건의 공사를 조달청을 통해 발주했더라면 적어도 1천9백억원 상당의 예산이 절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지자체마다 입찰참가범위, 예정가 결정절차, 낙찰자 선정 등에서 각기 다른 기준.절차.관행을 적용하는 바람에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돼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행정의 결과물로 나타난게 18조원에 육박하는 지자체 부채.

그런데도 각 지자체는 연말만 되면 예산을 모두 써야 한다는 핑계로 멀쩡한 보도블록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 돈을 ''눈먼 돈'' ''공돈''쯤으로 여기는 풍조는 중앙정부나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지난해 연말 헌법에 정해진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정부 예산안을 뜯어고치는 과정에서 농어가부채지원비 6천6백억원을 새로 배정했다.

고속도로까지 점거한 성난 농심을 잠재우기 위한 임기응변 조치였다.

정부가 92년부터 98년까지 농촌을 선진화하기 위해 쏟아부은 자금은 42조원.

젖소 50마리를 키우는 소농가에 조차 1억2천만원짜리의 값비싼 네덜란드제 젖짜는 기계를 구입하라며 돈을 빌려줬다.

그 결과 성과는 내지 못하고 농민들은 엄청난 빚더미에 눌렸다.

그 빚을 해결해 주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갑수 농림수산부 장관은 "농가부채 경감특별법이 제정돼 올해부터 10년간 4조5천억원이 재정에서 지원된다"고 말했다.

단군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는 경부고속철도를 보자.

이 사업 예산은 90년 6월 5조8천5백억원에서 93년 6월 10조7천4백억원, 98년 12조7천4백억원, 99년 18조4천3백억원으로 늘어났다.

잦은 설계변경으로 비용이 계속 부풀려져 완공때까지 최종적으로 얼마나 투입될지 알 수도 없다.

공사비가 기하급수로 늘어난 과정에 대한 관계당국의 자세한 내용설명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공적자금은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가.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9조2천억원이 투입된 한빛은행의 경우 지난해에만 2백50억원을 사원복지연금에 지원하는 등 98년이후 6백82억원을 사실상 직원들의 임금보전 용도로 썼다.

7조1천억원이 투입된 산업은행은 주택자금 지원명목으로 1%의 저금리로 직원들에게 1백20억원(지난해 7월말현재)을 대출해 주고 있다.

1백20조원대에 육박하는 1차 투입분과 36조원 가량의 추가조성자금이 얼마나 회수될지 불투명하다.

해외에서도 돈은 새 나간다.

전 주독대사관 L공사는 변칙회계로 공금 1만7천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H 전 리비아대사는 서류를 조작해 대사관저 임대료 8천5백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소환되는 등 올들어서만 6명의 고위 외교관이 ''돈문제''로 불려 들어왔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외환위기때 국내 달러가 얼마나되는지 정확한 통계도 없어 IMF 자료를 활용한 적이 있다"며 "공적자금에 관한한 무원칙.무제한(투입대상).무책임.무한정(규모)의 4무(無)정책만 있다"고 개탄했다.

최근 경실련의 찬조금 요구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시민단체 스스로도 공기업 돈까지 눈먼 돈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그러는 사이에 정부 투자.출자기관인 33개 주요 공기업의 빚은 정부 예산의 4배인 4백조원에 달하게 됐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