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속에 덤불들이 사라지고/해송 머리칼들이 사라지고/드디어 자욱이 바다가 사라진다.

(중략) 내 슬그머니 사라져도/저 눈 뿌리는 소리 그대로 들리겠지/아 청결해라''

<황동규 ''눈내리는 오천성''에서>

''아침밥 먹고/또 밥 먹는다/문 열고 마루에 나가/숟가락 들고 서서/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또/밥 먹는다''

<김용택 ''눈 오는 집의 하루''>

바닷가나 산속 마을에 눈이 내리면 지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사방은 고요해진다.

그러나 도회지에 눈이 오면 아름다운 건 잠시, 세상은 엉망진창이 된다.

눈은 땅에 닿기 무섭게 먼지와 매연때문에 시커멓게 된채 질퍽거리거나 얼어붙어 차와 사람을 미끄러지게 만든다.

올 겨울엔 이런 상황이 최악에 이르렀다.

몇십년만의 폭설에다 혹한으로 눈이 꽁꽁 얼었다. 주요 차도는 그럭저럭 녹았지만 보도나 이면도로 골목길은 온통 빙판이다.

뿐이랴.대부분의 아파트단지 마당은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워낙 많은 눈이 내려 경비원들만으론 제설이 어려웠는데도 주민 모두 나 몰라라 한 까닭이다.

바닥이 얼음판이다 보니 바퀴가 헛돌아 단지 안에서 추돌사고를 내는 일도 잦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금씩 깨면 될텐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은채 관리사무소나 경비원만 탓하는 바람에 어디나 사정이 비슷하다.

아파트 주민들의 이기적 태도는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추우면 배수가 잘 안되고 하수가 역류해 1층 베란다가 얼음바다가 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전히 물을 뿌리는가 하면 빨리 나오라고 클랙슨을 울리고 코너에 차를 세워놓는다.

날씨가 풀렸다곤 해도 응달진 곳의 얼음을 녹이기엔 어림없어 보인다.

게다가 주말부터 또 눈이 올지 모른다고 한다.

인간성회복추진위원회(인추협)등 시민단체가 ''내집앞 빙판제거 시민 울력주간''행사를 통해 도로의 얼음을 제거한다고 하거니와 이번 주말엔 모두 나와 아파트단지의 얼음을 깨보자.''울력걸음에 봉충다리 가듯''이란 속담도 있다.

여럿이 하는 힘에 이끌리면 못하던 사람도 할 수 있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제발 빗장 좀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