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만원권 지폐에는 한국 시계제작 기술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국보 229호 ''보루각 자격루''그림이 있다.

경복궁과 창경궁의 보루각에 설치됐던 자격루는 세종시대에 발명된 자동물시계다.

원래 있었던 물시계의 디지털식 시보장치가 유실돼 지폐그림에서는 청동으로 된 물 공급용 항아리인 파수호 3개와 이곳의 물을 받아 시간을 측정하는 항아리인 수수호 2개만을 형상화하고 있다.

실물은 덕수궁의 광명문 안에 전시돼 있는데 이것은 1434년에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명으로 만든 것을 1536년에 개량한 것이다.

밤낮 구별 없이 시간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제작됐으며 기계시계가 나오기 전까지 표준시계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제작된 물시계는 맨 위 항아리에 물을 넣어 차례로 흐르도록 함으로써 맨 아래 항아리에서 수수호에 일정하게 물을 공급하도록 했던 유입식이 주류를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수수호 안에 눈금을 새긴 잣대를 띄워 그 안의 물이 불어나는 데 따라 떠오르는 잣대의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시간 측정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눈금간격을 세밀하게 책정했다.

하지만 잣대 길이가 50∼60㎝정도여서 1각(15분)단위밖에 매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하룻동안 시간을 재기 위해 수수호의 물을 여러차례 빼고 잣대도 갈아 끼워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또 이로 인해 시간 측정이 중단돼 측정의 연속성이 깨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장영실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격루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그는 우선 수수호의 높이를 중국 물시계의 4배 정도로 키웠다.

잣대의 길이도 4배로 길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수호 한개로 하루의 시간을 측정할 경우 하루가 지나면 항아리가 가득 차게 돼 더 이상은 시간측정이 곤란했던 것.

장영실은 이를위해 수수호 2개를 만들어 교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잣대 길이는 거의 2m나 되었으며 눈금 단위는 1분 정도여서 중국보다 10배 이상 세밀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보루각 자격루의 수수호는 높이 2백25㎝,지름 36㎝의 원통으로서 물을 가득 채웠을 때 발생하는 수압에도 변형되지 않도록 통 둘레가 용틀임으로 장식됐다.

4백60여년이 지난 지금도 통 아래 위의 지름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다.

남문현 건국대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