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하(1926∼2000) 화백은 1987년에 당뇨병 합병증으로 쓰러져 1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다.

몸을 추스려 작업을 좀 해볼양으로 이것 저것 붓방아를 찧다가 화의(畵意)를 가다듬어 손을 댄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손이 따라 주질 않았다.

그러다 새해를 맞았다.

"그림을 그리면 죽는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려야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혼신을 다해 붓을 잡았다.

그리고 관행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 해가 1989년 바로 기사(己巳)년 뱀의 해였다.

변 화백은 뱀의 해에는 화가들이 그리기 싫어하는 뱀을 몇점씩 그렸다.

변 화백에게 있어 ''화사(花蛇)''(부조에 유채,100X100㎝)는 재기의 몸부림이다.

입에 꽃을 물고 있는 꽃뱀이 봄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쇠(鐵)인양 억센 등걸에 달라붙은 매화가 동양적 운치를 돋우고 있다.

운보(雲甫)김기창(金基昶) 화백이 불사조를 그리면서 "태양을 먹는 새"라고 표현 했듯이 ''화사''도 "꽃을 먹은 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화려한 색감,억센 나무,굵은 뱀의 몸뚱이로 힘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가 투병 중에 그렸다는 선입감 때문인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가 죽기 며칠 전에 썼다는 봉은사의 ''판전(板殿)''처럼 순진무구하다.

꾸밈이 없는 그림이라면 나의 지나친 억설(臆說)일까.

변 화백은 ''요철(凹凸)회화''의 창시자.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 로제 부이오는 "세계에서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변종하밖에 없다"고 그의 개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변 화백은 1993년 3월에 조선일보 미술관과 갤러리 현대에서 투병 8년 만에 신작(1백50점)만으로 매머드급 전시회를 열었다.

월간 아트인컬처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