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쓰여진 詩 .. 김광규 시선집 '누군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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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을 맞은 시인 김광규씨(한양대 독문과 교수)가 시선집 "누군가를 위하여"(문학과 지성사)를 펴냈다.
1988년 이후 출간된 시집 "좀팽이처럼""아니리""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중에서 70편이 수록됐다.
김씨는 단순명료한 언어로 이해가능한 객관적인 시세계를 일구어온 인물.담담한 어조와 절제된 감성이 특징적이다.
"...크로네 호텔 창밖으로/폭넓게 흐르는 라인강/포도주에 곯아떨어진 한밤 중에도 강물은 잠들지 않고 흘렀구나/지나간 20년 내가 없는 동안에도/넘칠 듯 가득히 흘러갔구나/네가 있고/내가 없음이여/하룻밤 묵고 떠나며/끊임없이 흘러갈 저 강물이 아까워/자꾸만 뒤돌아본다"(라인강 중) 대학시절 김씨는 난해한 게오르게와 카프카에 몰두했다.
주석없이 릴케를 읽을수 없으면서도 문학 공부란 어려운 작품을 해석해내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유학시절 브레히트와 하이네를 만나면서 추상적인 모더니즘만이 독문학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김씨는 이후 이해하기 "쉬운"문학을 추구해왔다.
"민달팽이 한마리/기어간다/혼자서/가족도 없이/걸어 잠글 창문이나/초인종 달린 대문은 물론/도대체 살면서 지켜야할 아무런/집도 없이/그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거나/밖으로 걸어나올/다리도 없이"(느릿느릿 중) 김씨의 시에는 애매모호한 암시가 없다.
정직한 대화,혹은 독백뿐이다.
시인 고은은 이를 두고 "예술적인 거짓마저 사양한다"고 했다.
"아침 나절 맑은 정신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시"란 평도 있다.
"온 나라가 일손을 멈추고/한 사람의 목소리에/귀기울이던 날/마침 중간 시험이 시작되던 월요일/안경을 쓰고/넥타이를 매고/교단에 선 나 자신이/부끄럽고/창피해서/커닝하는 학생들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그들과/나와/그/누가 정말로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부끄러운 월요일-1987.4.13) 호헌이 발표되던 날의 부끄러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이 작품은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 되어 월급이 얼마인가 묻고 헤어졌다"는 대표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시인은 "20세기를 정산하는 느낌으로 후기 선집을 냈다"며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시는 여전히 느린 속도로 쓰여지고 있으니 그 느림으로 품위있게 살아남으리라"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1988년 이후 출간된 시집 "좀팽이처럼""아니리""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중에서 70편이 수록됐다.
김씨는 단순명료한 언어로 이해가능한 객관적인 시세계를 일구어온 인물.담담한 어조와 절제된 감성이 특징적이다.
"...크로네 호텔 창밖으로/폭넓게 흐르는 라인강/포도주에 곯아떨어진 한밤 중에도 강물은 잠들지 않고 흘렀구나/지나간 20년 내가 없는 동안에도/넘칠 듯 가득히 흘러갔구나/네가 있고/내가 없음이여/하룻밤 묵고 떠나며/끊임없이 흘러갈 저 강물이 아까워/자꾸만 뒤돌아본다"(라인강 중) 대학시절 김씨는 난해한 게오르게와 카프카에 몰두했다.
주석없이 릴케를 읽을수 없으면서도 문학 공부란 어려운 작품을 해석해내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유학시절 브레히트와 하이네를 만나면서 추상적인 모더니즘만이 독문학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김씨는 이후 이해하기 "쉬운"문학을 추구해왔다.
"민달팽이 한마리/기어간다/혼자서/가족도 없이/걸어 잠글 창문이나/초인종 달린 대문은 물론/도대체 살면서 지켜야할 아무런/집도 없이/그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거나/밖으로 걸어나올/다리도 없이"(느릿느릿 중) 김씨의 시에는 애매모호한 암시가 없다.
정직한 대화,혹은 독백뿐이다.
시인 고은은 이를 두고 "예술적인 거짓마저 사양한다"고 했다.
"아침 나절 맑은 정신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시"란 평도 있다.
"온 나라가 일손을 멈추고/한 사람의 목소리에/귀기울이던 날/마침 중간 시험이 시작되던 월요일/안경을 쓰고/넥타이를 매고/교단에 선 나 자신이/부끄럽고/창피해서/커닝하는 학생들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그들과/나와/그/누가 정말로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부끄러운 월요일-1987.4.13) 호헌이 발표되던 날의 부끄러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이 작품은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 되어 월급이 얼마인가 묻고 헤어졌다"는 대표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시인은 "20세기를 정산하는 느낌으로 후기 선집을 냈다"며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시는 여전히 느린 속도로 쓰여지고 있으니 그 느림으로 품위있게 살아남으리라"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