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날밤은 예부터 1년중 가장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유럽의 농부들은 나팔을 불고 북을 치고 중국인들은 폭죽을 터뜨리면서 악귀를 몰아냈다.

이로쿼이 인디언들은 먹다 남은 옥수수와 옷 가재도구 등을 함께 모아 화톳불 속에 던져넣어 새 삶의 시작을 다짐했다.

그 시간은 무엇이든 허용되는 시간이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까지만 해도 한 해를 마치는 날인 ''세흘(歲訖)''은 시간의 한 마디가 끝나고 새 마디가 시작되는 절일(節日)의 하나로 남아 있었다.

축제의 카오스 속에서 지나가는 1년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날을 약속하는 연종제(年終祭)가 어김없이 지켜졌다.

"포 쏘는 소리가 구중대궐에 진동하고/사귀(邪鬼)를 쫓고 통금을 풀어놓으니/섣달 그믐밤인줄 알겠도다/밝고 휘황찬란하게 함부로 쏘아대고/기(旗)같은 불화살이 홀연히 황혼을 깨고 하늘로 올라간다"

헌종 때 사람인 유만공이 1843년에 지은 세시풍요의 한 대목을 보면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던 연종제의 열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궁중에서는 연종포(年終砲)와 불화살을 쏘아 한 해의 마지막 날임을 알렸고 징과 북을 울리며 방상씨 가면을 쓴 광대들이 나례(儺禮)를 벌였다.

민가의 마당에서는 생대(靑竹)를 태워 터지게 하는 ''대불놀이''를 벌여 잡귀들을 쫓았다.

또 이날은 벗을 청해 잔치를 베풀고 밤을 지샜다.

섣달 그믐날 밤에 쓸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미리 ''세찬계''를 들었다는 기록이나 미련한 짓을 하면 ''섣달 그믐날 시루 얻으러 다니기''에 비유하는 속담도 연종제의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흘러간 시간을 폐기하고 새로운 시간을 창시하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의 표현이 연종제였다.

시간의 사이클을 닫고 새로운 사이클을 여는 정기적 축제라고 해야 옳다.

오늘날 송년회는 이런 생각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축약된 것인 셈이다.

새 천년 첫 해인 금년의 세밑은 몹시 가라앉은 분위기에 젖어 있다.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혼돈속의 한 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종포라도 쏘아 묵은 해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새해를 맞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