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끝자락을 잡고 있다.

새 천년의 새로운 역사가 울려 퍼지던 광화문 그 화려한 축포의 연기가 사라지고 새로운 2001년의 먼 동이 바다면에서 움트는 지금, 한햇동안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본다.

참으로 신문조차 보기 싫은 날들이 많았다.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서 빚어진 ''높은 사회층의 생활상''은 평범한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상층이라는 자리에 앉아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상을 보여준 사건은, 지위나 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높은 삶의 품격과 향기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고, 그러기에 닮아 갈 만한 삶의 표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실망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날이면 날마다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발표되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성명이나 논평을 보고 들으면서 정작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 방향성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이 시끄러운 정치 싸움은,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이땅에서 무엇이 우리를 감싸며 삶터를 기름지게 하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힘을 잃게 하고, 국가안에 사는 기쁨과 사랑을 앗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지하철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돌아보게 되는 신문판매대에 놓여진 굵직한 제목의 활자들은 산다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끔찍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마치 안개처럼 슬그머니 다가선 경제위기의 그림자는,월급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루를 견디는 것이 행복인양 느껴지게 했고 또 ''어둠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낯선 사람처럼'' 터지는 신용금고 사건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알 수 없는 세상을 만나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어두움의 터널은 아직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 몇십억원을 털어 달아나 버리는 것은 살기 위한 발버둥 정도로 여겨진다.

대학에 가려고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점수차가 제대로 나지 않는 시험결과로 인해 다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려움쯤은 ''아버지의 실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을 만큼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져 있다.

이 터널 안에서 그래도 나는 한해를 보내며 마음 속에 몇가지 위안을 보게 된다.

요사이는 귀해졌지만 고향에 가면 아직도 볼 수 있는 반딧불이 캄캄한 밤을 점 같은 빛으로 밝히며 휘젓는 그 몸짓을 볼 수 있다.

20년을 젓갈장사 해서 10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한 여인의 고결한 삶은, 캄캄한 밤 하늘이 아직도 살아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리는 불빛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것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병든 아들을 살려보고자 눈 한쪽을 팔아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성냥파는 소녀''처럼 손안의 어둠을 쫓아내는 따뜻한 온기의 불빛이었다.

어린 날 명절이나 제사가 되어 할머니댁에 가면, 할머니는 객지에서 온 어린 손자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심부름이 음식을 담은 쟁반을 보자기에 싸서 다리밑 움막집 아주머니에게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온 손자를 거지에게 음식 주는 일부터 시킨다"고 투덜거리면, 할머니는 "고향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일렀다.

지금 고향에 가면 할머니는 산에서 푸른 잔디를 입고 계시지만, 움막집 아주머니의 아이들은 내가 형이나 되는 듯이 인사를 한다.

한 해를 산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다.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두움의 그늘이 아직도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지만 밝음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징검다리를 한발 한발 뛰듯이 살아온 한해,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던 듯 느껴지지만 새해는 다가온 것이다.

마지막 손을 흔들어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내고, 스무살 남짓한 젊은이가 1천억원을 주무르는 기적을 사진첩에 묻어 두는 새로운 내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