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그 혹은 그녀를 편애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의 입 속에 넣을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고,그녀의 얼굴에 바를 크림을 포기하고,그녀의 몸에 걸칠 좋은 옷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제 것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다.

오늘은 신이 나를 편애한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는지 보물찾기처럼 찾아내 보고 싶다.

해마다 조기를 구하기 위해 군산에 간다.

우연히 경매하는 아저씨를 소개받게 되어 시작된 나의 연례행사는 무려 15년간 계속됐다.

소금 간을 절일 때 나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는다.

소금 간 절이는 일이 나만 정확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오직 나의 정성을 바치고 싶어서일 뿐이다.

그리고 비늘 한점이라도 더 촘촘히 붙어 있는 조기,모양이 참조기 모습에 더 가까운 조기,은빛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한 조기,상처 한 점이라도 덜한 조기를 골라 나 아닌 사람,즉 내가 마음을 바쳐 기억하고 싶은,감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서다.

물론 크기는 백화점에서 파는 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볼품없지만 바다 낚시한 것처럼 싱싱한 생선이라는 믿음 때문에 더없이 흐뭇하다.

내 마음을 받은 사람이 이런 내 정성까지야 알지 못하겠지만 이런 내 모습이 예뻐 혼자서 웃는다.

그런 순간에 신이 나를 편애한다고 믿는 것을 누가 어리석다고 하리.

내가 살아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순간이 또한 그러하다.

스스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억의 순간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큰 벌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때마다 아직도 신은 나를 편애하는구나,빚진 만큼 어서 어서 저축해야지,때묻은 것을 누가 보기 전에 씻어내야지 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속고 또 속을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해줄 때마다 신은 나를 편애한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조언을 해 줄 때 나는 몹시 화를 낸다.

지나고 난 후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업상의 거래가 아닐 경우,믿지 못한 일 자체가 빚이며 믿은 만큼 상처받은 일은 오히려 저축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