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 민주당 의원 cma2000@polcom.co.kr >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녀석의 공책을 우연히 들여다보니 받아쓰기가 절반이나 틀렸다.

요사이 온 식구가 분주하게 지낸 탓에 돌봐주지 않았더니 그만큼 표시가 난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내가 직접 녀석을 앉혀 놓고 받아쓰기 시험을 해보았다.

읽기 책을 펼쳐놓고 ''뜻밖에도…''라고 불러주고 써보도록 했더니 ''떳밖에도''라고 쓴다.

왜 이것도 못쓰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녀석은 내가 그렇게 불러주었다고 당당하게 항변한다.

그 순간 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상도식의 내 발음은 무의식 중에 구분되지 않는 발음이 ''어''와 ''으''이기 때문에 녀석의 말대로 내가 틀린 발음을 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정확하게 ''뜻''이라고 발음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떳''이라고 발음하면서 제대로 못쓴다고 녀석을 혼낼 뻔했으니, 녀석에게 내 결점을 들키고 말았다.

되는 일도 별로 없는 답답한 정치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몸은 늘 바쁜데 하필 녀석의 받아쓰기 점수마저 형편없는 것을 보고 은근히 부아가 치솟던 차였는데,녀석 덕분에 긴장이 풀어졌다.

유태인의 속담에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마치고 굴뚝에서 나온 후 얼굴에 검댕이 묻지 않은 사람은 검댕이 묻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깨끗이 얼굴을 닦는데,오히려 검댕이 잔뜩 묻은 사람은 상대방의 괜찮은 얼굴을 보고 얼굴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구태여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결점과 흉을 보려면 상대방을 잘 보면 된다.

경제도 어렵다지만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요즘 우리 사회분위기가 경제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는 측면이 많다.

각자 자신의 내부논리로 무장한 채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기 바쁘다.

너무나 확신에 찬 나머지 다른 고려나 배려를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는데 상대방이 잘못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일방의 논리로 끌고 가려 하고,만약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파행시키겠다는 억지를 많이 본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각자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가 너나없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