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학 교수 / 국제대학원장 >

''큰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뿌리가 깊고,긴 가뭄에 마르지 않는 물은 깊은 샘에서 나온다'' 용비어천가의 첫구절 가르침이다.

요즘 우리 경제사회가 얼마나 든든한 뿌리,얼마나 깊은 샘을 가졌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3분기중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9.2%인데 실질 국민총소득은 3.4% 증가에 그쳐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급속히 냉각하고 있다.

이는 원유 등 수입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수입단가가 크게 오른 반면,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은 오히려 내림세를 보여 교역조건이 나빠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체감경기의 냉각은 민간소비심리를 위축시켜 재래시장,백화점 가림없이 매출실적이 예년의 연말경기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한다.

이는 경기순환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자연스런 적응이기도 하고,금융ㆍ기업ㆍ노동부문의 구조조정 진통에서 경제위기 재발가능성을 감지한 과잉반응이기도 하다.

과열과 급랭,두 스위치만 달린 가전제품으로 알맞게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는 없다.

나라살림도 그러하다.

오르내림ㆍ급회전이 심한 롤러 코스트 운전하듯이 국민경제를 운용해온 정부를 반길 국민은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국민경제를 이루는 경제주체들 하나하나의 행동양식에 기본문제가 있다.

깊은 샘이라도 일정기간에 고이는 물보다 퍼내는 수량이 많으면 조만간 고갈되게 마련이다.

높은 국민소득은 높은 국민생산과 동전의 양면이다.

소득분배가 생산성에 걸맞고,소비(저축) 투자 등 지출구조가 건실해야 일정 수준의 국민생산이 유지된다.

개별 경제주체들의 고소득 욕구는 인간적이지만,이같은 개별분배욕구들을 모두 합계하면 국민총생산을 초과하게 마련이다.

결국 과잉분배 욕구를 국민총생산에 어떻게 맞추느냐에 국민경제 운용의 성패 갈림이 있다.

지난날 권위주의시대 정부는 임금상승 압력을 억압하는 힘의 위력 덕분에 국제경쟁력을 유지했던 반면, 민주화 이후 정부는 과거의 반작용으로 과잉분배 욕구를 조절할 자율기구가 없어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을 상실했다.

현 정부의 노ㆍ사ㆍ정 운영도 균형감각을 잃고 파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각종 이익집단들의 이득 챙기기 운동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동자ㆍ농민의 가두시위가 늘고 있다.

내년 초반 이후 정치가는 대선을 향한 길고도 소란스런 과정에 들어설 것이고,정부의 경제운용 고삐는 풀리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나서서 주인의식을 갖고 나라경제를 제집살림처럼 챙겨야 한다.

우선 분배 못지 않게 생산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의 가난을 한(恨)풀이하듯 애써 모은 나라 곳간의 재물,뒤주의 쌀을 축내기에 경쟁하듯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역 경쟁국보다 고임금·저생산성 국가가 돼 경제위기의 불씨가 자라고 있다.

정부의 분배복지정책도 ''생산적''이란 수식어에 정책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집행돼야 한다.

다음으로 어려운 문제는 가르고 보자.가르면 해법의 실마리가 보인다.

욕구불만을 시위하는 이익집단들에 대해 ''조용한 다수'' 국민이 차별화하는 안목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왔다.

반면 요즘 시위현장의 주도세력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누리며 잘 조직된 전투적 공기업ㆍ대기업 노조임을 직시해야 한다.

농산물 사주기로 농촌 살리기에 참여해 빈곤한 농민을 도와야 하지만,부채탕감시위 가담자는 대다수 일반농민과 다르다.

정부돈ㆍ농협돈을 빌려 쓸 수 있는 힘깨나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고,금융계좌를 들춰보면 빚 감당할 금융자산이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돈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각종 사고 때마다 정부보상요구가 많다.

제가 잘못하고도 정부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때론 시신을 앞에 두고 떼 쓰는 야만스런 풍속도가 전파를 타고 해외에 보도된다.

심고 가꾸어야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수량조절이 있어야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주인의식없는 국민에게는 벌거벗고 메마른 산하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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