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4시45분부터 평양 고려호텔 2,3층 식당에서 단체상봉이 시작되자 상봉장은 금세 통곡과 눈물로 가득찼다.

휠체어를 타고 방북한 1백세의 유두희 할머니는 칠순을 훌쩍 넘긴 아들 신동길씨를 만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홍양국씨(86)는 "제가 성은입니다"라는 아들의 말에 "내가 애비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후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울고, 통곡하고, 만져보고, 물어보고...

50년간 가슴에 묻어둔 한을 털어내기에 2시간의 단체상봉시간은 너무나 짧기만 했다.

<>.피란통에 북에 홀로 남겨두고 온 큰아들 상순(55)씨의 얼굴을 마주한 한정서(80)씨는 아들을 부여안고 눈물만 흘릴 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애비 구실을 못해서 미안하구나.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고생이라뇨. 아무일 없습네다"

아버지 한씨는 손자.손녀 소식을 물은 뒤 함께 오지 못한 부인 정성실(79)씨의 소식을 전했다.

한씨가 "네 어머니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했는지 아느냐"며 아쉬워하자 아들 상순씨는 "또 오실 기회가 있겠지요. 저는 이젠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라요"라며 안심시켰다.

<>.남측 방문단의 양철영(81)씨는 1.4후퇴 직후 종교탄압을 피해 월남하다 헤어진 부인 우순애(73)씨의 뺨을 자꾸 어루만지며 지난 50년간 쌓였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헤어질 당시 부인 우씨는 스물넷, 여섯달과 세살의 아들도 북녘에 두고 왔던 양씨는 "혼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우씨의 손을 놓지 못했고 우씨는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맙다"며 오히려 남편을 위로했다.

그러나 생존이 확인된 처자식과 며느리, 손자 등 9명의 가족중 상봉장에는 우씨와 두 아들만 나와 아쉬움을 남겼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셨습니까"

여동생 순애(61)씨만 살아있을줄 알았다가 뜻밖에도 아들 중만(50)씨를 만난 현서욱(80)씨는 생면부지의 아들을 부둥켜 안고 미안해 할뿐 말을 잇지 못했다.

조그만 아이로만 기억해온 여동생 정옥(65)씨도 환갑을 넘었다.

외동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님이 남행을 권해 임신 8개월의 약혼녀를 고향인 흥남에 두고 혼자 배를 탄지 50년.

남쪽에서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아들의 손을 잡고는 "너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끈질기게 살았는지 몰라"라며 아들의 손을 꼭 쥐었다.

<>.부인 리용순씨(78)과 1남2녀를 만난 백남선씨(82)는 딸 기손(58) 기옥(55), 아들 기호씨(53) 등과 "눈물파티"를 벌인 뒤 손을 맞잡고 "고향의 봄"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쉰을 넘긴 아들, 딸들의 재롱을 보면서 백씨는 흐뭇한 표정.

그러나 남쪽에서 재혼해 6남매를 둔 백씨는 "남편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미안하고 안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쪽의 두 동생 해조(59) 해범(56)를 만난 박해수씨(71)는 꼼꼼한 "컴퓨터상봉준비"로 행사장 주변의 눈길을 끌었다.

컴퓨터 강사인 박씨는 그간 수집해온 일가, 친척의 사진 50여장을 분류해 동생들에게 전달했고 고향지도를 펴놓고 동생들에게 고향집 모습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또 미리 준비한 질문순서대로 항목별로 꼼꼼히 고향소식을 물어 상봉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

/평양=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