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도쿄에서 구마가이(熊谷)의원 등 일본 민주당 중진의원 여러 명과 저녁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모리 총리 불신임안이 부결된 다음 날이어서 화제는 자연히 정치 지도자 자질 문제에 집중됐다.
이들 민주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리 총리가 실패한 지도자라면서 아시아 전역이 실패한 정치 지도자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고 비꼬았다.
사실 이미 필리핀 국회는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시켰고,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통령과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 등은 탄핵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마히티르 총리 등 아시아 전역의 국가 수반들이 국내의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IMF 위기극복,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 등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사정은 사뭇 다르다.
구조개혁 지연과 제2경제 위기론, 파행 국회와 정치 개혁의 실종, 폭풍전야의 노사분규, 사회적 불안감의 확산은 총체적 위기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노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 탓으로 돌려지고 있는 바, 이러다간 김 대통령 역시 실패한 대통령의 반열에 포함되고 말 운명이다.
건국 이후 우리의 정치사는 실패한 대통령들로 점철돼 왔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국부(國父)로까지 칭송됐지만 결국 대국민 하야성명과 더불어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근대화와 경제기적이란 업적에도 불구하고 암살의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임기 후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그리고 1997년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했던 김영삼 대통령 등 실패한 대통령의 연속이었다.
이번만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한번 성공한 대통령을 가져보자.
성공한 대통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과 지도자의 자질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국민의 열광적 성원과 지지가 있어야 비로소 성공한 대통령이 탄생할수 있는 것이다.
파벌주의 지역주의 냉소주의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가학적 음해주의가 만연하는 한 실패한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개혁을 희구하면서도 개혁의 부작용을 빌미로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뒤흔든다면 대통령은 물론 우리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 보자.
그러나 국민에게 요구만 할 수는 없다.
오늘의 위기국면을 기득권의 저항 음모, 그리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국민 탓으로만 돌려선 안된다.
대통령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황제적 모습의 대통령으로는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IMF 극복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와 국민들 삶의 현장을 파고들어 그들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의례적 여론조사에 집착하지 말고, 노사분규에서 농민집회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현장에 나서 이들의 어려움을 듣고,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 국회 정치 스타일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은 하늘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의 견제를 받는 행정부의 수장일 뿐이다.
국회를 어려워 해야 한다.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국민적 합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를 활성화하려면 우선 여당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영수회담만이 대야 관계의 절대적 단일 창구가 될 수 없다.
주요 사안별로 여야 주요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치하고 이들과 교감하며 지지와 협력을 구해야 한다.
명분만 분명하면 대통령이 개별의원까지 접촉해 도움을 청하는데 거절할리 만무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새로운 신화를 창출해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은 또 다른 성공한 대통령을 가져오는 선(善)순환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정적 시기에 우리 국민들은 가학적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지도자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김 대통령도 이제 정상회담과 노벨상 수여 축제의 흥분에서 벗어나 겸허한 마음으로 민생 문제를 주도면밀하게 해결해 존경받는 지도자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