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의 노총각 C씨.

얼음장 같이 차디찬 서울역 지하 보도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도 한때는 어엿한 슈퍼마켓 사장이었다.

할인점 등 대형 점포가 들어서고 불황이 겹치면서 빚만 늘어 더 이상 버틸수 없었다.

간신히 들어간 할인점 사원 자리도 올 하반기 들어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눈치가 보여 그만둬야 했다.

틈만 나면 손을 벌렸던 형제들 보기가 미안해 전세돈을 빼내 빌린 돈부터 갚았다.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된 C씨는 서울역으로 발길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수소문 끝에 노숙자지원센터에 들렀다.

상담끝에 노숙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쉼터(주거시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조만간 그곳으로 옮길 생각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처럼 일거리를 잃은 노숙자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경기둔화와 계절적 요인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사태와 퇴출은 하루벌이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서울 지역의 경우 지난 99년 1월 4천7백여명으로 정점을 이뤘던 노숙자 수가 지난 9월말 3천1백25명으로 바닥을 친뒤 10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중순 현재 3천3백명 안팎으로 늘어난 노숙자수는 내달부터 급상승 커브를 그릴 것으로 내다봤다.

11개 퇴출 건설업체의 현장 일용직 인력이 16만4천명에 달해 이들중 일부만 길거리로 나앉아도 노숙자가 지금의 몇배로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11.3 기업퇴출의 영향이 가시화되는 내년 3~4월께는 서울역과 서소문 일대가 노숙자 벨트화됐던 지난 98년 봄의 우울한 장면이 재현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한문철 서울시 노숙자대책반장은 "현장조사를 통한 자료를 분석해보면 전체 실업자에 대한 노숙자 비율이 0.4% 안팎"이라며 "실직자들의 일부가 노숙자로 바뀌는 것은 5~6개월의 시차를 두고 있어 내년 봄에 노숙자들이 급증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태=노숙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거리에서 자는 사람''이지만 시민·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복지시설에 들어와 기거하는 ''입소노숙자''도 이에 속한다.

현재 이들 노숙자수는 서울에 약 3천3백명,전국적으로는 약 6천명에 이른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 집''의 경우 현재 수용인원이 8백40명으로 한달전보다 1백명이나 늘었다.

여기에서 신상 상담을 거쳐 장기 수용시설인 쉼터(노숙자 복지시설)로 가게 된다.

쉼터는 서울시내에만 1백5개,전국적으론 2백개에 육박한다.

최성남 자유의 집 사무장은 "최근 이곳에 입소자가 급증한 것은 계절적 요인과 지방경기의 악화 때문인 것 같다"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대부분이 지방에서 일용노동자로 일하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거리 노숙자들의 집합지는 주로 서울역 영등포역 을지로 등의 지하 보도.

요즘 4백여명이 이들 지역에 흩어져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입소 노숙자들보다 생활환경이 열악하지만 이를 마음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서울역 노숙자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김유경씨는 "거리 노숙자의 40%정도는 일용직이나 단순 노무직을 하던 분들이 많다"며 "이 때문에 이들의 증감은 건설경기와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대책=실직자들중 일부는 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어쩔 수 없이 ''공포의 겨울''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봄 이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기업퇴출로 인한 실직자들의 일부가 노숙자 대열에 가세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97년12월 이후 올해까지 공공근로 등 실업대책 예산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관련 재정이 바닥났다.

정은일 ''전국실직노동자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민간단체들이 연대해 체계적인 노숙자지원 조직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예산지원을 하지 않으면 당장 실무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