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싸고 재계와 시민단체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여온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 문제가 정부의 최종 개선안 마련으로 가닥을 잡았다.

집단소송제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로 국한하여 단계적으로 도입하고,집중투표제는 의무화는 하지 않되 제도적 보완장치를 통해 집중투표제 채택이 용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는 소수주주권 강화와 경영권 보호를 절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각에서 정부 절충안으로는 재벌 총수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의 ''개혁후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IMF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세게 밀어붙이는 것을 개혁으로 여기는 인식이 관행화되었다.

그러나 합리적 근거에 의해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절충하는 것을 개혁후퇴로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논거는 ''낮은 지분율+전권적 경영''으로 압축되는 재벌총수의 전횡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소수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 선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지배구조는 잔여통제권의 소재와 위임구조를 의미하는 것으로,대표자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기업지배권은 본질적으로 정치권한과 같다.

집중투표제의 논리라면 예컨대 유권자의 35%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은 그의 각료 중 65%는 야당이 추천한 인사로 채워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거국내각의 구성 여부는 대통령의 재량사항이며,거국내각을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국정에 실패할 경우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총수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경영에 실패한 총수에게 그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적 차원의 ''책임경영''정착인 것이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이사회가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로 나뉘어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 있다.

특히 시장기회를 선점하는 기업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21세기 기업환경을 고려할 때 ''스피드 경영''의 지체는 기업에 큰 잠재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기시 나가미가 일본 기업이 90년대 들어 미국에 뒤진 가장 큰 요인으로 ''속도경영''을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집단소송제는 경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경영의 관점에서 도입은 타당하다.

그러나 기업의 선의의 판단착오는 집단소송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의 허위공시,분식회계,유가증권 신고서 조작 등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로만 집단소송을 제한한 것은 적절한 정책판단이다.

주주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소송남발은 차치하고 조금이라도 실패의 가능성이 있는 투자계획은 보류되어 기업활동이 현저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개선의 기본취지는 재벌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책임경영의 정착으로 재벌총수 견제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재벌총수만 견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단순논리다.

공정거래법의 엄정한 적용을 통해 투자자의 재산권이 보호되고 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수 있다면,기업지배구조를 기업경영환경과 시장규율의 작용 속에서 기업 스스로 선택하는 내생변수로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재벌총수의 전횡적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지배구조라는 내부규율장치의 불비(不備)에 1차적 원인이 있었지만,근본적으로는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치 않음으로써 시장이 재벌총수의 전횡을 추인했기 때문이다.

법리에 기초한 미시적 접근이 만능이 아닌 만큼 적대적 인수·합병의 활성화,기관투자가의 관계투자 강화,기업회계 투명성 확보 등 시장규율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시스템적 접근이 더 유효한 대안인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의 완성을 위해서도 지배구조개선은 법리 이전에 경제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필자 약력=

△서울대 건축공학과
△미국 신시내티주립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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