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카야마에 있는 벤처업체인 산요기기의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놀랄 만큼 깨끗하다.

이곳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안에 커다란 글자가 하나 나타난다.

''창(創)'' 자이다.

세면대에서도 창조적인 발상을 하라고 거울반대편 벽면에다 창자를 붙여놓은 것이다.

아무리 창조성을 강조하는 벤처업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창조성을 강조하는 환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무실 이름은 더하다.

먼저 관리부의 이름부터 고동부라고 지어놨다.

생각하면서 움직이라는 뜻이다.

기술개발실의 이름은 아예 ''창조실''로 돼있다.

2층에 있는 회의실의 이름을 보면 실소하고 만다.

창조실옆 큰 회의실이름은 ''뉴턴''이다.

또 6개의 소그룹 회의실이름은 창조적인 과학자의 이니셜을 활용했다.

A(아르키메데스) B(벨) C(퀴리) D(다빈치) E(에디슨) F(플레밍)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 회사의 경영이념은 크리베이션(Creavation).

창조를 나타내는 크리에이션과 이노베이션을 합성해 만든 말이다.

산요기기가 이렇게 심하게 창조성을 강조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 회사의 야노게이이치 사장은 5년전 중소기계업체에서 기술과 과장으로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기술과를 없애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기술을 무시하는 기업에 대해 분노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기술창조기업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가진 거라곤 기술뿐이었다.

기술만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공장없는 제조업체"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함께 쫓겨난 직원들과 창조를 강조하는 무공장 시작품업체를 차린 것이다.

현재 산요기기는 이렇게 창조를 강요하면서도 연구개발(R&D)부문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그 까닭을 들어보면 정말 부럽기만 하다.

지금까지 주문한 기술을 확실하게 개발해줬기 때문에 R&D비용을 주문업체로부터 먼저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 2층 계단옆엔 ''싱킹룸''이란 방이 하나 있다.

이 룸엔 전화나 컴퓨터 등 일체의 통신기기가 없다.

여기에선 외부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사장이 불러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곳에선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고 창의적인 발상에만 몰두하라는 뜻이다.

한국의 벤처기업에서 사원들에게 이처럼 창조성을 강요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호응을 받을까 아니면 역반응을 일으킬까.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