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5일 발표한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의 불법대출 자금흐름은 누가 대출받았는지를 확인한 반면 대출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찾아내지 못한 반쪽자리 조사다.

대출금의 용도가 확인돼야 정.관계 로비의혹 등이 풀릴 전망이다.

금감원이 새로 확인한 사실은 동방금고(서울)와 대신금고(인천)의 불법대출액이 5백14억원이 아닌 6백37억원이고 서울 해동금고와 한신금고가 정 사장과 출자자 교차대출로 공모했다는 정도다.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의 개입에 대해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 불법대출은 ''鄭-李'' 합작품 =금감원은 동방.대신금고의 불법대출중 4백94억원이 21개의 3자명의 등을 통해 정 사장과 관계사에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고 미확인 1백43억원도 실제 차주(借主)를 정 사장으로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 사장의 ''1인 자작극''이지만 금감원은 이 부회장의 개입이 확실하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김중회 비은행검사1국장은 "정 사장의 불법대출금 가운데 상당액은 이 부회장과 공동 대출됐거나 이 부회장에게 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과 이 부회장의 연결고리를 밝히려면 검찰의 계좌추적 등 정밀수사가 절실하다.

◆ 교차대출의 금고업계 파장 =정 사장은 동방.대신금고에서 끌어쓴 돈으로도 모자라자 해동.한신금고와 공모해 출자자 교차대출로 불법대출액을 늘렸다.

이로써 ''정현준 게이트''에 다른 금고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구조조정을 앞둔 금고업계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출자자 교차대출이란 A,B 금고가 각각 상대방 대주주에게 대출해줘 불법대출을 은폐하는 것이다.

금고는 출자자 대출이 제한(지분 2% 이상 주주에게 대출금지)돼 있어 이런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정 사장은 해동.한신금고 대주주 관계사에 대출해 주면서 이들 금고에서 각각 62억원, 24억원을 대출받았다.

중간조사결과 드러난 교차대출액이 두 금고의 자기자본보다 적어 영업정지까지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자들은 중징계를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 6백37억원은 어디에 쓰였나 =정 사장은 대출받은 돈으로 우선 사설펀드의 손실(15억원)과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의 투자손실을 채워준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주주인 평창정보통신의 관계사인 평창종합건설 등 3개사에 흘러간 75억원이 운영자금인지, 정 사장이 다른데 썼는지 확실치 않다.

정 사장은 한국디지탈라인과 평창정보통신 주가를 유지하는 데도 상당액을 투입했을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했다.

그러나 6백37억원이 모두 어디에 쓰였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대출금 사용처의 추적은 검찰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수표추적 과정에서 정치인에게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이 명확이 밝혀지지 않고선 정.관계 로비설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을 풀기 어렵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