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초.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던 한 육류 유통업체가 느닷없이 정보통신 및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자회사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에 필수적인 컴퓨터 전환장치를 개발해 생산한다는 내용이었다.

16달러를 맴돌던 이 회사의 주가는 발표후 석달만에 1백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폭발성을 보였다.

미처 주식을 사놓지 못했던 투자자들은 땅을 쳤다.

잘 하면 시스코시스템즈나 루슨트 테크놀러지같이 대박을 터뜨려 줄 종목처럼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시장의 눈은 온통 이 회사에 쏠렸다.

주인공은 다이애나사.

육류 유통업계에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기업이었다.

신중한 투자자들은 회사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미심쩍은 투자자들은 회사 경영진과 인터넷 관련 기술을 획득하게 된 배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한층 더 공격적인 투자자들은 다이애나 주식을 쇼트셀링(공매도)하기 시작했다.

쇼트셀링 주식잔고가 급증했다.

''아센시오''라는 전문적인 쇼트셀러까지 나섰다.

주가에 거품이 꼈다며 투자자들에게 쇼트셀링할 것을 권유했다.

"회사측의 의도된 주가 띄우기이며 관련 기술은 구식인 데다 효용성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센시오의 주장과 쇼트셀링 투자자들의 믿음은 시장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다이애나사 주가는 96년 중반 20달러,97년 중반엔 한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쇼트셀링의 정당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 회사는 결국 98년 상장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쇼트셀링(Short-selling).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팔 수 있는 미국의 공매도제도다.

쇼트셀링의 절차는 이렇다.

특정 종목의 주가가 과대평가된 것으로 판단돼 하락이 예상될 경우 투자자는 우선 보유하고 있지 않은 그 종목 주식을 증권사로부터 빌린다.

다음엔 부풀려져 있는 높은 가격에 일단 판다.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사서 증권사에 되갚는다.

예를 들어 현재 증시에서 10달러에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거품주''로 지목했다고 치자.

쇼트셀러는 해당 주식을 되도록 많이,예컨대 1만주를 빌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장에 팔아치운다.

일단 10만달러를 손에 쥐게 된다.

이윽고 그의 예상대로 해당 주가가 곤두박질쳐 가령 한 달 뒤에 5달러로 하락했다고 가정하자.

그는 이때 증시에서 그 주식 1만주를 5만달러에 사서 빌려준 사람에게 되갚는다.

이 과정에서의 차액 5만달러는 고스란히 그의 수중에 떨어진다.

미국에서 쇼트셀링 제도가 정착된 것은 오랫동안의 시행착오와 논란을 거쳐서였다.

실제로 미국증시 역사상 쇼트셀링이나 쇼트셀러(Short-seller:전문적인 공매도 세력)들은 1929년 주가 대폭락을 일으켰으며 이후 주가 회복을 지연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Bear Raid(약세장을 의미하는 곰들의 침공)''란 비난을 사기도 했다.

당시 미국 상원이 진상 조사에 나설 정도였지만 쇼트셀링의 부작용을 밝혀내진 못했다.

특히 미국 상장사들은 쇼트셀링에 대해 부정적이다.

쇼트셀러들은 부정확하고 오도된 회사 관련 정보를 퍼뜨리는 세력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쇼트셀링에 걸린 상장사들은 법정소송까지 제기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뉴 리퍼블릭지의 크레이그 카민 기자는 "증시가 활황세일 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상장사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어한다"고 지적한다.

경영진을 화나게 했다가는 향후 회사로부터 유용한 자료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호재성 뉴스를 펌프질하거나 악재에 달콤한 설탕을 바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시장 왜곡세력에 대한 대항마로서도 쇼트셀링의 유용성은 높다"고 강조한다.

주무 당국인 연방 증권감독위원회(SEC)도 최근 쇼트셀러들의 운신 폭을 보다 넓혀 주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폴 캐리 SEC 상임위원은 "쇼트셀링이 남용될 경우 주가조작이나 시장침체 등의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어 각종 규제장치를 운영해 왔다"며 "그러나 증시를 건전하게 육성하는 데 쇼트셀링이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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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한상춘 전문위원
<>이학영 차장(국제부
<>육동인 특파원(뉴욕)
<>강은구(영상정보부)
<>김홍열(증권1부) 기자